[칼럼]박정훈 해병 수사단장과 대통령의 자기부정
상황을 거꾸로 돌려보자
만일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 고 채수근 상병 사건에서 상부로부터 '수사 외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면 해병대와 군은 어떻게 되었을까. 해병대 수사단이 해병 1사단장과 연대장 등 상급 지휘관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하급자만 혐의를 적시해 사건을 경찰에 이첩했다면 해병대와 군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틀림없이 해병대와 군은 국민적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귀신 잡는 해병은 커녕 해병대가 귀신에 포획됐다는 비판이 울렸을 것이다.
대민지원 작전 중 병사가 어이없이 사망했는데 지휘 책임자들이 면책 받는다면 그것은 군이 아니다. 일개 조직 폭력 집단이라면 모를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군 수해 작전 중 구명조끼 하나 못 입혀 병사 목숨을 잃게 하는 군에게 어느 부모가 영원한 해병을 믿고 자식을 맡길 것인가.
박정훈 단장은 사안을 똑바로 직면했다. 그는 이첩 보류에 대한 국방부 측 요구를 받고 고민하는 해병대 사령관에게 여러 번에 걸쳐 다음과 같이 설득했다고 말했다.
"해병대는 정직해야 합니다. 사건을 경찰에 빨리 넘기는 것이 해병대가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이미 유가족에게 1사단장 등 8명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설명했고, 국방부 장관의 결재도 받았습니다. 국방부 측 요구대로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 될 수 있습니다. 수사서류 조작과 왜곡이 되어 더 큰 화가 올 수 있고 정직한 해병대 이미지는 다 무너질 것입니다."
박 단장은 해병대 정신으로 해병대를 살려냈다. 동시에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도 살려냈다. 해병대 군심과 민심을 수습한 것이다.
그는 1사단 수뇌부의 직접적 과실과 정황 증거, 물적 증거를 바탕으로 9백 페이지에 이르는 수사기록을 통해 혐의 사실을 특정한 뒤 사건을 민간 경찰에 이첩했다. 국방부 장관은 참모들과 해병대 사령관이 참석한 회의에서 수사 내용을 보고받고 원안대로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도록 결재했다. 장관은 고생했다"고 수사 단장 어깨를 다독였고, 배석한 국방부 대변인도 "수사가 잘돼 사단장까지 책임을 묻는다면 국민도 납득할 것"이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지금 박 단장은 '집단항명 수괴'라는 어마무시한 죄명의 혐의자로 정권에 의해 내몰리는 신세가 되었다. 군사경찰의 직무수행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 7조에 따라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한 수사단장이 왜 막다른 골목에 서게 되었을까. 정권의 '외압'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외압의 '실체'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대통령 안보실 개입을 지나치기 어렵다. 경찰 이첩에 대해 장관 결재까지 낸 사안이 뒤틀리기 시작한 건 7월 30일 안보실이 수사자료를 요청하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 이후 수사단의 언론브리핑이 취소됐고 국방부는 차관과 법무관리관이 나서 이첩 내용에서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뺄 것을 해병 사령관과 박 수사단장에게 종용했다. 박 단장은 "사단장과 연대장은 책임자에서 빼라는 외압으로 느꼈다"고 실토했다. 더욱이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장관 결재 사실도 모른 채 혐의 내용을 빼라고 요구했다고 하니 국방장관이 어느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지시를 했는지조차 의아할 따름이다. 국방부는 그냥 '보류 지시'라는 말로 얼렁뚱땅 박 단장을 몰아댄다.
또 하나는 대통령 '의중'에 따른 외압 가능성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당시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경찰 수뇌부 책임에 대해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발언은 실제 이태원 물론 충북 오송 참사, 챔버리 실패에서도 그대로 이행되고 있다.
이상민 장관은 탄핵심판에서 돌아왔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사법처리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사건을 처음 수사한 경찰은 김 청장을 과실치사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 전 '구속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1월 13일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서부지검 수사팀은 청장 집무실 등을 1주일새 두 번이나 압수수색하고 구속영장 청구 의견을 냈지만 대검은 '구속이 불필요하다'며 보완지시를 내렸다. 검찰 송치 후 8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김 청장 처리는 캐비넷 속에서 먼지만 켜켜이 쌓이고 있다. 대검 수뇌부를 넘는 '다른 판단'이 아니고는 납득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국정원 댓글수사는 물론 적폐수사 때마다 '실무자 보다는 수뇌부의 사법 책임'을 무시로 강조했다. 특히 국정원 수사때 '아랫사람들이야 시켜서 한 일이지 책임은 수뇌부에게 물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하곤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나라의 지도자가 된 뒤 역대 어느 지도자보다 윗사람에게 정치적이든 사법적이든 책임을 묻지 않는 대통령이 되었다. 이는 자기 부정이고 내로남불이다. 책임을 수뇌부에 물을수록 정치적 부담은 커진다. 윤 대통령은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검사 시절, 윤 대통령은 '수사 외압론'을 단순 명쾌하게 설명했다. 수사라는게 앞으로 자꾸 치고 나가게 해줘야 되는데, 수사팀을 힘들게 하고 뭔가를 자꾸 따지고, 수사하는 사람들이 느끼기에 좀 도가 지나쳤다면 그런 것을 외압이라고 느낀다는 것이었다. 해병대 사안은 이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이것을 수사 외압이라고 하지 않고 '집단항명 수괴'라니 어처구니 없다.
정부와 여권은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의 외압폭로를 '군기 문란'으로 제압하려 한다. 권력은 힘이 있을 때 힘으로 밟고 지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박근혜 정부시절 '정윤회 문건'이 터졌다. 당시 검찰은 문서 유출혐의로 조응천 의원과 박관천 전 경정만 처벌했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른 후 최순실 존재가 드러났고 권력은 몰락했다. 시간이 지나면 국민적 의혹을 산 사건은 진상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자동차가 고물이 되면 도로 위 과속방지턱도 넘기 어렵다. 권력도 힘이 빠지면 길가의 요철도 넘지 못하는게 세상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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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구용회 논설위원 goodwil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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