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우유 3000원 시대’ 눈앞… 밀크플레이션 오나 [심층기획]

안용성 2023. 8. 15.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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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사료비 등 생산비 상승 반영
10월부터 음용유 원유 ℓ당 88원 인상
7월 우유 물가 9.3%↑… 9년 만에 최고
커피·아이스크림 등도 가파른 상승세
정부, 물가 자극 우려에 인상 자제 요구
“안 올린 업체, 가공유 구입비 지원 확대”

먹거리 물가가 출렁이고 있다. 폭염과 수해, 태풍까지 이어지면서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던 물가가 장바구니 품목을 중심으로 다시 요동치는 분위기다. 여기에 우유값 인상이라는 변수도 대기 중이다. 우유 가격은 오는 10월부터 인상이 예고된 상태다. 낙농진흥회가 원유 기본가격을 ℓ당 88원 올리기로 결정하면서다. 이에 따라 흰우유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ℓ당 3000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유 가격 인상은 커피, 아이스크림 등 다른 제품까지 연쇄적으로 값이 오르는 ‘밀크플레이션’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우유값 상승으로 인한 물가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지만, 하반기 물가 상승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우유가 진열되어 있다. 연합뉴스
◆‘흰우유 3000원 시대’ 눈앞

14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최근 낙농진흥회는 음용유 원유 가격을 ℓ당 88원, 가공유용 원유 가격을 ℓ당 87원 올리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10월1일부터 흰우유 등 신선 유제품 원료인 음용유 원유 가격이 ℓ당 1084원, 치즈 등 유가공제품 원료인 가공유용 원유는 ℓ당 887원이 된다.

원유 가격 결정 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우유생산비다. 원유 가격은 올해부터 시행된 새로운 낙농 제도에 따라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우유생산비와 시장 상황을 고려해 협상으로 결정된다.

구체적으로는 통계청이 우유생산비를 발표하면, 낙농진흥회는 7인의 이사로 구성된 협상 소위원회를 운영해 가격을 협의한다. 소위원회는 낙농진흥회 회장, 생산자 이사 3인, 유업계 이사 3인으로 구성된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우유생산비는 최근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9년 ℓ당 791원이던 생산비는 2020년 809원, 2021년 843원, 2022년 959원까지 올랐다. 사료비와 기름값 상승 등의 여파가 컸다. 생산비가 늘어난 만큼 원유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올해 원유기본가격 조정 범위는 1ℓ 기준 음용유 69∼104원, 가공유 87∼130원였다. 음용유의 인상 폭(88원)은 가격 조정 범위의 중간 수준이며, 지난해 기준 생산비 상승분(ℓ당 116원)의 75%에 해당한다. 대신 가공유 인상 폭은 가격 조정 범위의 최저값인 87원에 결정됐다. 인상 시점도 평년보다 두 달 늦은 10월로 연기됐다. 물가 인상 부담 완화와 시차를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원유 가격이 인상되면 시중에서 판매되는 흰우유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크다. 원유 가격이 ℓ당 49원 인상된 지난해에도 흰우유 가격은 일제히 상승했다. 당시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우유 제품의 가격을 평균 6% 인상했다. 흰우유 1000㎖의 제품 가격이 6.6% 상향됨에 따라 대형마트 기준 2710원이었던 1000㎖ 우유 가격은 2800원 후반대로 형성됐다. 매일유업은 흰우유 900㎖ 제품 가격을 2610원에서 2860원으로 9.57%, 남양유업 역시 900㎖ 기준 2650원에서 2880원으로 8.67% 각각 인상했다.

올해 원유 가격 상승 폭이 전년도의 2배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현재 1ℓ짜리 한 팩에 2800원 수준인 흰우유 가격은 3000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커피, 아이스크림값 줄줄이 오르나

우유 가격 인상은 다른 품목의 연쇄 인상으로 이어진다. 우유를 원료로 사용하는 커피, 아이스크림, 빵, 과자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에도 원유 가격이 오르자 이를 사용하는 식음료 제품 전반의 가격이 덩달아 올라갔다. 당시 빙그레는 편의점 판매 제품의 가격 인상분을 미리 적용해 소비자판매가 기준으로 투게더는 8000원에서 9000원으로 12.5% 올렸고 붕어싸만코, 슈퍼콘, 빵또아를 2000원에서 2200원으로 각각 10% 올렸다.

게다가 아직 흰우유값 인상이 적용되지 않았는데도 유제품 가격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 가는 중이다. 통계청 국가포털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우유 물가상승률은 9.3%로, 2014년 8월 11.4%를 기록한 이후 약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달(9.0%)과 비교해도 0.3%포인트 올랐다. 분유도 8.1% 올라 2020년 10월(8.8%) 이후 2년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아이스크림(10.7%) 상승률도 전달(9.4%)보다 증가했고 치즈(20.5%), 발효유(13.7%) 등 품목도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 갔다.
유업체(우유제품 생산 업체)는 원유 가격 인상 폭에 따라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이 올라가는데 제품 가격을 그대로 두면 손해를 보고 팔라는 말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커피 가격도 마찬가지다. 상당수 프랜차이즈 카페가 우유를 사용하는 라테 제품의 가격을 인상했다.
정부는 원유값 인상이 다른 제품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면서도 연쇄 인상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상태다. 농식품부는 우유 및 유제품은 식품 원료로 사용되나 원료 사용 비중이 낮고 수입산 사용이 높아 가공식품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또 국산 원유는 대부분 마시는 우유를 만드는 용도로 사용되며, 우유와 연유를 제외하면 치즈, 분유 등은 수입산을 많이 사용해 우유 가격 인상이 가공식품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크지 않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이 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정부는 유제품 가격 안정을 위해 업계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이미 농식품부는 원유 가격이 결정되기 전후로 유업계, 낙농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가격 인상 자제를 촉구한 바 있다. 박수진 농식품부 식량정책실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센터에서 유업계 관계자들과 만나 “원유 가격 인상이 과도한 흰우유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적극 협조해 달라”고 했다. 다만, 지난 6월 라면값 인상 억제 간담회 등을 통해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는 비판을 받은 정부가 원유값 인상에 따른 다른 식품 가격에까지 관여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원유값이 인상되는 10월 이후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는 유업체에 한해 가공유용 원유 구입비를 현행보다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밀크플레이션 등 물가가 최고 이슈인 만큼 다른 식품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흰우유 가격 인상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유업체 원유 구매 지원, 학교 우유급식 단가 인상 등이 국회 예산심의단계에서 추가 반영될 수 있도록 유업계에서도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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