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포커스] 이사회보다 먼저 아는 내부정보… 예고된 금융사 증권대행 사고
고객사 내부정보로 매매차익 127억 챙겨
하나은행·예탁결제원도 증권대행업무
업무 특성상 미공개 정보 취득할 수밖에 없어
금융사, 내부통제로 100% 사고 예방 어려워
KB국민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일부 증권대행업무 직원이 미리 알게 된 기업의 미공개 정보를 악용해 발생했다. KB국민은행에서 증권업무를 대행하는 직원들이 미공개 무상증자 정보로 주식을 거래해 127억원의 부당 이득을 봤다. 해당 직원들은 지난 2021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61개 상장사의 무상증자 업무를 대행하는 과정에서 무상증자 규모와 일정 등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취득하고 본인과 가족 명의로 해당 회사의 주식을 매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KB국민은행을 비롯해 증권대행업무를 하는 금융회사가 무상증자 등 일부 주식 관련 정보를 이사회 결의 전에 습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미공개 정보를 사전에 습득하게 되면 불공정 거래 등 금융사고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 증권대행업무를 하는 다른 금융사들도 사실상 KB국민은행 증권대행업무 부서가 미공개 정보로 부당이득을 취한 것과 같은 금융사고의 가능성에 노출된 상태인 것이다.
증권대행업무는 주식회사가 주주들에게 발행한 주권을 증권계좌를 통해 거래할 수 있도록 통일규격주권이나 전자증권으로 교체·등록 발행한다. 또, 주주총회·증자 등 주식 관련 업무를 위탁해 대행한다. 현재 증권대행업무를 하는 곳은 KB국민은행, 하나은행, 한국예탁결제원이다.
15일 증권대행업무를 수행하는 KB국민은행·하나은행·예탁결제원의 업무안내서 등에 따르면 모든 증권대행업무 회사에서 고객 기업의 이사회 결의 전에 무상증자 계획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무상증자는 기업이 자본금을 늘리면서 새로 발행하는 주식을 주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무상증자를 통상 단기 주가 상승을 부르는 호재로 인식한다.
KB국민은행은 통일규격주권 등 발행 이후 유상증자, 무상증자, 임시주주총회 등 주식 관련 업무 진행 시 반드시 이사회 결의 전 증권대행사업부 담당자와 일정을 사전 협의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무상증자 절차의 첫 번째 단계로 ‘무상증자를 위한 일정 상담’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위탁회사가 무상증자를 실시하는 경우에는 신주배정기준일, 명의개서정지기간, 주주명부의 확정, 신주권의 발행, 상장 시기 등을 당행과 사전에 협의해 일정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라고 설명서에 명시했다. 이 절차가 끝난 뒤 무상증자를 위한 이사회 결의가 이뤄진다.
예탁결제원은 무상증자 일정표에서 무상증자계획 이사회 결의를 가장 첫 단계로 소개하고 있다. 다만, 명의개서대행업무 위탁계약서 제9조에 따라 업무일정 협의가 필요하다는 조건을 달았다.
주식회사는 무상증자 일정을 증권대행업무 금융회사에 사전에 알릴 의무는 없다. 증권대행업무 회사들은 무상증자 정보를 미리 알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 “계약 주식회사의 요청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무상증자 일정과 절차에 대해 주식회사가 증권대행업무 금융사에 이를 문의하는 과정에서 해당 정보를 습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은행 관계자는 “증권대행부서가 무상증자든, 유상증자든 절차와 시뮬레이션을 짜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라며 “해당 기업의 담당자들도 정확하게 잘 모르는 경우가 있어 증권대행부서에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 업무 특성상 증자 정보를 알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증권대행업무 금융사가 기업의 내부정보를 사전에 습득하게 되면 불공정거래 등 금융사고의 확률이 커진다.
그러나 금융사는 증권대행업무 부서에 대한 미공개 정보 취득을 금지할 수 없다. 기업의 주식 관련 업무를 다루는 것이 증권대행업무 부서의 본업이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주식 관련 업무의 일정, 절차 등을 기업과 함께 진행하는 것이 증권대행부서가 있는 존재 가치다”라며 “결국 금융사의 내부통제를 강화해 사고 가능성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증권대행업무 금융사들은 내부통제 강화에 힘쓰고 있다. 고객 기업에 미공개 정보 제공을 최대한 자제해달라고 하는 등 금융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 그러나 내부통제의 빈틈을 모두 막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은행 관계자는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증권대행업무 직원으로부터 투자상품 매매 내역을 받는 등 내부통제를 하고 있지만, 친인척 등의 계좌까지 강제할 수 없다”라며 “사고를 100%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대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이다”라고 했다.
금융감독원도 증권대행업무 금융사에 대해 내부통제시스템에 고객사와 상담과정에서 미공개정보 취득 최소화, 증권대행부서 내 직원 간 불필요한 미공개정보 전파 최소화, 미공개 정보 이용행위 사전‧사후 통제 강화 등을 반영하도록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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