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부등본 보는 법도 몰라 눈 뜨고 코 베일 판인데 학교에선 가르치지도 않는다고요?[법률·부동산·금융, 얼마나 아십니까]
드라마에서나 보던 ‘상속’
정작 자신의 일 되자 ‘당황’
친척 말만 믿고 맡겼다가
한 푼도 못 받을 뻔 ‘낭패’
“친척 믿었는데…” 법 몰라 낭패 볼 뻔
“○○아 오랜만이다. 나 삼촌인데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별다른 재산은 없고 카드빚과 대출채무뿐이니까 서류만 넘겨주면 나머진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사회초년생인 20대 직장인 A씨는 지난해 가을 외삼촌의 전화를 받았다. 외삼촌은 A씨에게 “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관련 서류를 정리해야 한다”면서 인감, 인감증명서, 위임장을 건네달라고 했다. A씨는 중학교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외가 친척과 교류 없이 아버지와 생활하고 있었다. 외삼촌과도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10년이 넘었다.
A씨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상속’이 자기 일이 되자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친척들이 해코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인감증명서를 떼줬다. 회사 적응도 쉽지 않은 와중에 일을 더 길게 끌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아버지도 옛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접했지만 상속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뭔가 좀 이상했다. 사실상 ‘남’에게 각종 서류를 아무 검토 없이 준다는 게 찝찝했다. 인감증명서는 부동산 등 금액이 큰 거래에 필요하다고 얼핏 들은 기억도 났다.
A씨는 포털사이트 검색으로 상속 분야 전문 법무법인을 찾아 법률상담을 받고 고인의 재산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 정부24 ‘원스톱 안심상속 서비스’에서 확인해보니 외할아버지 명의로 거액의 부동산과 예금이 있었다. A씨와 그의 아버지 몫 상속분만 2억원이었다.
A씨는 외삼촌에게 상속분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외삼촌은 “병원비가 많이 들었고 부양도 우리가 전담했다”며 턱없이 작은 금액에 합의하자고 했다. A씨는 합의에 실패한 후 외삼촌 등을 상대로 상속재산 분할 심판 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A씨 부자가 승소할 수 있었던 것은 대습상속 제도 때문이다. 대습상속이란 “상속인이 될 직계비속 또는 형제자매(피대습인)가 상속 개시 전에 사망하거나 결격자가 된 경우, 사망하거나 결격된 사람을 대신해 피대습인의 직계비속(자녀·손자녀) 또는 배우자가 상속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상속을 받을 사람이 사망하면 그의 자녀나 배우자가 대신 상속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A씨 사례에서 사망한 외할아버지의 재산은 A씨 어머니 몫이었지만 어머니가 사망함에 따라 A씨와 A씨 아버지가 각각 자녀(직계비속), 남편(배우자) 자격으로 상속을 받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상속인에 해당하는지, 법정 지분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한 A씨는 믿었던 친척에게 그야말로 ‘눈 뜨고 코 베일 뻔’했던 셈이다.
신은정 법무법인 테헤란 변호사는 “상속 경쟁 관계에 있는 친·인척들이 법률에 밝지 않은 연소한 상속권자들을 ‘알아서 처리해주겠다’는 식으로 속여 재산상 이익을 편취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면서 “만일 인감, 위임장 등 주요 서증을 넘긴다면 나중에 자기 몫의 상속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되찾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제제도에 대한 이해 차이가
청년세대 양극화로도 연결
전세사기 피해자 다수가 청년
등기부등본 열람·연말정산하는 법도 몰라
사회에 진출하면 누구나 대등한 지위에서 경제에 참여하게 된다. 특별한 사회적 보호 대상이 아닌 이상 청년이라는 이유로 ‘초보자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생활에 참여하는 연령대가 갈수록 낮아지면서 시장이나 제도에 대한 이해도 또한 조기에 갖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해의 차이는 청년세대에서 양극화가 시작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가령 10·20대부터 주택청약 납입을 시작한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뒤늦게 가입한 사람보다 내 집 마련의 기회가 커진다.
올해에만 5명을 삶의 낭떠러지로 몰아버린 전세사기의 피해자 대부분은 원룸에서 객지살이를 하고 있는 청년들이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이번 전세사기 피해자 중 61.3%가 2030세대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치러야 할 학습비용으로 보기엔 그 피해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막심하다. 법률·부동산·금융 지식 격차 문제로부터 청년들은 사실상 방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의의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기초적인 생활경제 관념을 확충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조언한다.
현행 고교 교육과정에서는
부동산 관련 내용들 빠져
“임대차·등기부등본 열람 등
일부라도 교과과정에 넣어야”
“부동산 계약은 ‘어른들 얘기’인 줄 알았죠”
서울 흑석동에서 5년째 살고 있는 대학생 전모씨(24)는 졸업을 앞두고 새로 살 집을 알아보다가 가슴을 쓸어내리는 경험을 했다. 최근 터진 ‘전세대란’을 보고 불안한 마음에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떼봤더니 전씨가 살고 있는 집 앞으로 12억원에 달하는 융자(대출)가 잡혀 있었다.
전씨가 거주하던 집은 심지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전세보증보험)도 들어 있지 않았다. 현행 민간임대주택법은 등록임대사업자가 의무적으로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법이 개정되던 2020년 당시 기존 임대사업자에게는 1년 유예기간을 둬 2021년 8월부터 비로소 보험 가입 의무가 생겼다. 전씨가 집을 계약한 2020년 9월에는 전세보증보험이 임대인(집주인) 의무 사항이 아니었다. 집주인은 그 이후에도 보험에 신규 가입하지 않았다.
HUG에 따르면 2015년 7221억원 수준이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발급액은 지난해 55조4510억원으로 77배 가까이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을 발급받은 가구 수도 3941가구에서 23만7797가구로 60배 넘게 늘었다.
전세사기의 여파로 올해도 급증해 지난 상반기 기준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발급액(37조848억원)과 발급가구 수(16만3222가구)는 이미 지난해의 67%에 달한다.
전씨는 “계약 당시 중개사 사무실에 가서 등기부를 보는데 갑구, 을구의 구분조차 잘 몰랐다”면서 “계약할 때 융자가 걱정스러워 물어봤지만 중개사는 ‘요즘 융자 없는 집이 어딨냐’는 식으로 넘기길래 그런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세대란’ 때 융자로 근저당이 앞서 잡혀 있는 집에 입주해 사기당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자 ‘나도 잘못되는 것 아닌가’ 싶어 전씨의 불안도 커졌다.
전셋집이 미덥지 않던 전씨는 가족과 상의해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면 새집을 사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내 마곡동 일대 원룸에 입주하기로 하고 부동산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전씨에게는 8월 예정 일자에 문제없이 전세금을 돌려받는 것이 관건이다. 원래 살던 집 임대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다면 잔금을 치르지 못해 새집에 입주하기로 한 계약이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그에겐 부동산 계약이 전적으로 ‘어른들의 영역’으로 남아 늘 어렵게만 느껴졌다고 한다. 전씨는 “비록 전문가는 아니시지만 부모님 입회 없는 부동산 계약은 엄두도 못 낸다”면서 “관련 학과를 나오거나 공인중개사 공부를 해본 사람이 아니면 또래 중에 부동산 관계법에 밝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교과과정에서 ‘정치와 법’ 수업을 들었지만 부동산과 관련한 내용은 없었고 수능 선택과목도 한국지리, 세계지리를 고르는 바람에 법에 대해 제대로 배울 일이 없었다”고 했다. 학부 과정에서도 ‘헌법학’을 교양으로 들어본 게 전부였기 때문에 부동산 임대차에 관해서는 접해볼 일이 없었다는 게 전씨의 말이다.
실제로 현행 교과과정은 부동산과 관련한 교육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교과과정 개정 과정에서 ‘정치와 법’ 과목에 부동산 관련 법, 민사소송 등 생활과 밀접한 내용이 빠진 점은 교육계의 우려를 사기도 했다. 고교 사회탐구 과목 중 하나인 정치와 법은 2015년 교과과정이 개정되면서 종전 ‘법과 정치’에서 이름을 새로 단 과목이다.
손경찬 충북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청년세대가 사회에 나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고교 교육과정에서 최소한의 생활법률 지식과 밀접한 내용을 다룰 필요가 있다”면서 “가령 ‘정치와 법’ 과목에 부동산 매매·임대차·등기부등본 보는 법 정도는 일부분만 할애하더라도 충분히 교과과정에 포함시킬 만하다”고 말했다.
“돈은 내가 더 썼는데” 연말정산 결과는?
4년차 직장인 서모씨(28)에게 연말정산은 여전히 ‘13월의 숙제’다. 홈택스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를 이용해 소득 및 세액공제에 필요한 증명자료를 발급받아 회사에 제출하면 된다지만 서씨에겐 그 외에도 신경 쓸 게 많다. 특히 카드 사용액 공제를 고려해 소비 계획을 세울 생각을 하면 머리가 지끈지끈해진다.
신용카드로 매년 2000만원 넘게 결제한다는 서씨는 지난해 연말정산을 해보니 35만원 정도를 공제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 연봉은 비슷해도 지출은 적다고 생각했던 직장 동료 B씨가 50만원 넘게 환급받았다는 얘길 듣자 서씨는 혼란스러웠다.
우선 서씨는 신용카드와 체크카드의 소득공제율이 다르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연간 카드 사용액이 연봉의 25%를 초과하면 초과분에 대해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신용카드(15%)의 소득공제율은 체크카드(30%)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국세청에서 카드 소득공제액을 추산할 때 신용카드 사용금액부터 먼저 공제한다. 이를 감안한다면 연 소득의 25%까지는 신용카드를 쓰고 초과되는 금액부터는 소득공제율이 높은 체크카드를 쓰는 게 유리하다. 소득세법상 소득공제 대상이 될 수 있는 카드 최저 사용금액은 총급여의 25%부터다.
서씨는 또 학생 시절부터 콘택트렌즈를 사용해왔지만 렌즈 구입 비용은 최근까지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에서 조회되지 않아 연말정산에서 누락됐었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됐다. 반면 B씨는 연말정산 때마다 렌즈 판매점에서 영수증을 발급받아 연말정산 기간 회사에 제출해왔다. 안경과 콘택트렌즈 구입비는 2021년부터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 자료에 자동으로 입력되도록 바뀌었다.
B씨는 또 공제를 받기 위해 ‘주택청약’도 활용하고 있다.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르면 총급여액이 7000만원 이하이고 과세연도 중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가구주는 주택마련저축(주택청약)에 납입한 금액의 40%에 해당하는 금액을 근로소득금액에서 공제받을 수 있다.
서씨는 “스스로 수리적인 감각은 있다고 생각했지만 세금 계산이나 경제 관념 면에선 약한 편”이라면서 “번거롭기도 하고 소득공제를 받아도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아 연말정산을 염두에 둔 소비를 하진 않았다”고 했다. 그는 “지출을 갑자기 줄이는 건 어려운 만큼 공제받을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챙겨봐야겠다”고 말했다.
이장원 세무사는 “2030 직장인들은 미혼이거나 부양가족이 많지 않아 교육비, 의료비 등 다른 공제는 받을 것이 적고 ‘신용카드 등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를 주로 받고 있을 것”이라면서 “연말정산 공제 요건 대부분은 12월 말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연말정산이 시작되는 이듬해 1월에 신용카드 소득공제 등을 챙기려 한다면 이미 늦다”고 말했다.
이 세무사는 “사회인에게 본인의 자산관리를 위한 세금 지식은 기본인 만큼 세제에 대한 기초지식을 확실히 익혀둬야 연말정산 때마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정혁·유희곤 기자 kjh05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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