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저소득층 지원이 재정건전성 올리는 이유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정부지출 줄여 인플레 잡아야"
공화 '산모 보조' 축소 추진하지만
WIC가 더 많은 비용 절감 효과
저소득층 건강지원 손대지 말길

[서울경제]

미국 연방대법원이 1년 전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는 기존 판례를 기각하는 판결(돕스 판결)을 내리자 공화당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에게 도움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은 어떨까. 공화당 의원들은 반대로 어려움에 처한 산모와 그들의 어린 자녀로부터 음식을 빼앗아가려 한다.

공화당은 최근 하원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연례 농업지원법안에 ‘여성, 영유아 및 어린이 특별 영양 보조 프로그램(WIC)’ 예산 삭감 조항을 포함시켰다. 농업지원법안은 농촌 개발을 위한 연방정부의 무상 지원과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저리 융자 프로그램 제공을 내용으로 하는 지출법안이고 WIC는 저소득층 가족에 영양 보충 식품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WIC는 저소득층 산모와 어린이의 영양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1970년대에 마련됐다. 일반에 널리 알려진 푸드 스탬프 프로그램 수혜자들은 월 지원금 한도 내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식품을 거의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는 반면 WIC는 출산 전후의 여성과 만 5세까지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필수 영양 식품으로 구입 가능 품목을 제한한다. 당국은 정기적이고도 과학적인 검토를 통해 이들이 꼭 필요로 하는 식품을 법으로 지정한다.

WIC는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영양 식품 식단을 뽑아낸다. 또 모유 수유에 관한 상담과 약물 남용 방지 프로그램 등 임신부와 산모를 위한 건강 및 사회복지 서비스를 안내하거나 제공한다. 말하자면 WIC는 부유한 국가의 정부가 저소득 가구의 어린이와 임산부에게 당연히 제공해야 할 기본적인 건강 지원 프로그램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정부는 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WIC는 지난 수십 년간 공화·민주 양당의 초당적인 지지를 받았다. 1997년 이후 의회는 WIC 연간 예산을 단 한 번도 삭감하지 않았고 수혜 자격을 갖춘 신청자는 빠짐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확고한 WIC 지원 의지가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다. 예산및정책우선순위연구센터는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에서 2024 회계연도 농업지원법안이 통과될 경우 530만 명의 어린이와 임산부가 WIC 수혜 자격을 상실하거나 혜택 축소를 겪을 것으로 추산했다.

구체적으로 460만 명의 기존 가입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줄어든다. 전미과학공학의학한림원(NASEM)의 추천에 따라 2021년 확대됐던 과일과 야채 지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산 부족으로 수혜 자격을 충족한 신청자 65만~75만 명의 프로그램 신규 가입이 불허된다. WIC 프로그램 신규 가입을 신청한 취약 가정에 혜택을 제공하지 않고 대기자 명단에 올린다는 하원의 계획은 반세기 만에 처음 나오는 조치다.

게다가 법안이 발의된 타이밍이 좋지 않다. 연방대법원의 돕스 판결에 공화당 의원들은 일제히 환호했으나 자녀 부양 준비가 안 된 상태임에도 낙태를 선택하지 못한 수천 명의 임신부들은 충격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전국적인 유아식 부족 현상까지 발생했다. 인플레이션도 2년째 이어지고 있다. 미국인들이 치솟은 밥상물가로 어려움을 겪자 공화당은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정부 지출부터 과감히 줄여야 한다”며 물가고를 사회복지 프로그램 축소 주장의 당위성을 입증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물론 공화당이 WIC 자체에 대한 반감 혹은 빈민을 괴롭히려는 의도에서 프로그램 축소를 제안한 것은 아니다. 단지 공화당이 갖고 있는 정책 우선순위가 민주당과 다를 뿐이다. 공화당은 채무 한도 협상에서 합의된 것보다 더 큰 규모의 비국방 부문 지출 삭감을 밀어붙이기로 작심한 듯 보인다. 공화당 스스로 좁게 설정한 예산 테두리 안에서 국경 안보 등 그들이 원하는 선순위 프로그램을 지키려다 보니 사회안전망 프로그램에 칼질을 가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공화당의 우선순위가 재정 적정성이라면 WIC는 절대 손대지 말아야 할 프로그램이다. WIC에 사용되는 1달러는 기타 정부 지출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1달러보더 더 많은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온다. 임산부와 유아의 영양을 지키기 위한 투자는 조기 출산 감소, 신생아 체중 증가는 물론 유아의 정신 및 신체 발달 개선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공화당 의원들은 WIC 예산 삭감이 책임 있는 재정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들은 목욕물과 함께 아기까지 버리는 정책적 실수를 범하고 있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