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독당 명부에 이승만·안재홍도… 1947년엔 범우파 뭉쳤다

유석재 기자 2023. 8. 15.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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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당원 477명 명부 첫 공개
8월 13일 오전 경기도 조소앙 선생 협회 사무실에서 조소앙 선생의 종손 조인래 전 광복회 감사가 소장중인 김구 선생, 조소앙 선생, 이승만 전 대통령, 조완구 선생,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 등 독립운동가 이름이 적힌 1947년 한국독립당 제6차 전당대회대의원 명부를 들어 보이고 있다. / 장련성 기자

광복 직후인 1947년 한국독립당(한독당)의 당원 명부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대한민국 29년(1947년) 5월 제6기 전당대표대회 대표원명부·자격심사부’라는 제목의 이 자료는 한독당의 공식 문서다. 이 문서는 지난 13일 독립운동가 조소앙(1887~1958) 선생의 종손(從孫)인 조인래(61) 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이 본지에 공개했다.

이 명부엔 한독당의 주축인 김구 등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 계열 인사들 외에 이승만, 안재홍 등의 이름이 포함돼 있어 주목된다. 문서를 검토한 전문가들은 “광복 직후 한독당이 신탁통치 반대 운동의 중심 세력이 되면서 기존 임정 세력의 범위를 넘어서 이승만과 중도 우파 등 다양한 세력으로 외연을 확대하려 했던 시기의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평가한다. 우파 통합을 염두에 둔 한독당이 ‘범 우파 정당’으로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노력했음을 알 수 있는 문서라는 것이다.

이 문서는 1947년 5월 당시 한독당 당원 477명을 번호와 함께 기록해 놓았다. 김구가 1번으로 가장 먼저 기록됐고, 2번 조소앙, 3번 이승만(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4번 조완구, 5번 조경한, 6번 신익희(국회의장), 7번 이청천(지청천·무임소 장관), 8번 엄항섭, 11번 이범석(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 순으로 적혔다. 기존 김구 세력의 주요 인물들에 이승만이 추가된 양상이다. 임정 계열 인사가 아닌 안재홍(19), 명제세(21), 이승복(22), 방응모(28) 등의 인사들도 명부에 기재됐다.

13일 공개된 한독당 문서 ‘제6기 전당대표대회 대표원명부·자격심사부’의 앞부분. 모두 477명이 적힌 이 당원 명부엔 김구(1번)를 시작으로 조소앙(2), 이승만(3), 신익희(6), 이청천(7), 이범석(11), 안재홍(19), 명제세(21), 이승복(22), 방응모(28) 등의 이름이 들어 있다. 한독당이 기존 임정 세력의 범위를 넘어서 ‘범우파 정당’을 지향했던 시기의 문서로 보인다. /조인래 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장

본지 의뢰로 이 문서를 검토한 오영섭 대한민국사연구소장은 “현재 드물게 남아 있는 광복 직후 한독당의 문서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고 말했다. 장석흥 국민대 명예교수는 광복 정국에서 김구 세력이 아니었던 이승만의 이름이 3번으로 적힌 것에 대해 “당시 반탁 운동으로 우익 세력이 결집하는 상황에서 반탁 운동의 주요 인물인 이승만을 한독당 간부로 추대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오영섭 소장은 “한독당 당원 명부는 처음 접하는 것”이라며 “임정 인사들이 명단 상위에 있고, 안재홍·이승복·명제세 등 중간파 인사들이 그다음에 기록된 것은 1946년 안재홍의 국민당이 한독당과 통합한 이후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당원 명부에는 당시 조선일보 사장이던 계초 방응모의 이름도 기록됐다. 계초가 한독당 당원이었다는 것은 지금까지 여러 증언 등으로 전해졌지만, 당시 문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석흥 교수는 “계초가 한독당원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문서”라고 했다. 오영섭 소장은 “계초가 전 조선일보 사장인 안재홍의 추천으로 함께 한독당에 입당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1947년 6월 단독정부 찬반과 당권 문제 등으로 안재홍 계열이 한독당을 탈당하면서, 계초도 이들과 행동을 같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한독당은 다시 임정 출신 인사들의 정당으로 축소된다.

문서를 공개한 조인래 회장은 “뒤늦게나마 역사를 바로잡거나 새로 조명할 것이 있다면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올 초까지 광복회 감사 등을 지냈으며, 현재 삼균학회 이사장도 겸하고 있다. 이 문서는 6·25 때 납북된 조소앙 선생이 남긴 것으로, 1980년대 초 집안 어르신이 유품 일체를 넘겨주며 ‘자칫 큰 사화(士禍)를 일으킬 수 있으니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조 회장은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 반대 진영에 해를 입을 수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며 “지금껏 보자기로 꽁꽁 싸 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광복을 맞이하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기까지 우리 선조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이 성찰할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독립당(한독당)

한독당은 1930년 상하이임시정부 시절 결성된 민족주의 정당으로 백범 김구 등 임정 인사를 중심으로 광복 정국에서 활동했다. 신탁통치 반대 운동에 앞장섰고 단독 정부 노선에 반대해 남북 협상에 나섰다. 1949년 6월 김구 암살 이후 세력이 약화됐고 1950년 6·25 전쟁 때 주요 인사가 납북된 뒤 해체됐다. 이후 1963년 재건된 한독당은 1970년 야당인 신민당에 통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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