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은서 빌린 급전 100조원, 언제까지 꼼수로 세수 구멍 메울 건가
올 들어 7월까지 부족한 세수를 보충하기 위해 정부가 한국은행에서 빌려 쓴 자금이 100조원을 넘었다. 코로나로 재정 지출이 급증했던 2020년 같은 기간의 90조원보다도 10조원 이상 더 많다. 정부의 한은 대출은 개인의 마이너스 통장처럼 세입·세출 간 시차로 생기는 일시적 자금 부족을 메울 때 활용하는 임시 수단이다. 급할 때 예외적으로 쓰는 급전 조달 수단이 정부의 상시적인 자금 확보 창구로 변질됐다. 경기 침체로 올 들어 세수가 작년보다 40조원 이상 줄자 한은 대출로 구멍을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나랏빚을 늘리지 않겠다며 올 예산에 반영된 46조원의 국채 외에 추가 국채는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부족한 돈을 구할 곳이 한은 대출밖에 없는 셈이다. 한은 대출은 새 돈을 찍어 푸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시중 유동성을 늘리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부작용을 낳는다. 그래서 한은은 정부 차입 한도(올해는 50조원)를 정하고 ‘기조적인 부족 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등의 엄격한 부대 조건을 달아 가급적 정부 대출을 억제하려 한다.
하지만 정부는 조건을 하나도 지키지 않은 채 계속 한은 급전에 의존하고 있다. 적자 국채를 발행할 경우 시장 금리를 끌어올려 가계부채 폭발과 부동산 경착륙을 촉발할 가능성을 우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정부의 고충은 이해되지만, 세수 부족을 한은 대출에 의존해 풀어가는 변칙 해법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만에 하나 한은 대출을 제때 못 갚는 사태라도 발생하면, 국가 신인도가 훼손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앞 정부가 망쳐놓은 재정을 다시 건전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윤 정부의 첫 예산인 올해 예산도 그다지 긴축적이지 못했다. 정부는 추경 79조원이 포함된 작년 예산 총액보다는 6% 줄인 것이라고 했지만 작년 본예산보다는 5.2% 늘려 편성했다. 4월 말 종료 예정이던 유류세 인하를 8월 말로 연장하는 등 인기 없는 세수 늘리기 정책도 여전히 회피하고 있다.
경기 침체와 기업 수익 감소로 내년 세수 여건도 좋지 않다. 단기간에 세수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면 해법은 지출 거품을 과감하게 걷어내는 것뿐이다.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불요불급한 지출의 고강도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 경제성 없는 예타 면제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남는 돈을 주체 못 하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 2000여 종의 과잉 현금 복지부터 과감하게 수술해야 한다. 모든 예산을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해 지출 구조를 쇄신하는 방법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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