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오후 6시까지만 재판” 황당 합의, 더 심각해질 재판 지연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 법원장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오후 6시 이후 재판이 진행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의 글을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 애초 중앙지법과 법원노조 중앙지부의 단체협약에 담긴 내용이었지만 고용노동부가 시정 명령을 내려 단협에선 빠졌다고 한다. 이후 노조가 ‘정책 추진서’ 방식으로 추진하라고 요구하며 법원 곳곳에 현수막을 거는 등 압박하자 법원장이 이를 수용한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노조 압박에 법원장이 굴복한 것도 어이없지만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해 더 심각해질 재판 지연이다. 실제 재판하다 보면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앞으로는 판사들이 오후 6시 전에 끝내고 다시 재판 기일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5년 동안 2년 내에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이 민사소송은 3배, 형사소송은 2배로 늘었다. 여기에 ‘오후 6시까지 재판’ 원칙까지 더해질 경우 재판 지연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피해 보는 재판 당사자와 사법 소비자는 안중에도 없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4년 전엔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와 법원노조가 정기 인사(人事)가 있는 매년 1월 초와 7월 초에 약 2주일씩 재판을 열지 않기로 합의한 적도 있었다. 직원들의 새 부서 적응 부담을 줄여주자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권고 사항”이라고 했지만 국민이 재판 지연으로 피해를 보건 말건 내부 직원 사정만 감안해 노조에 선심을 베푼 것이다.
법원 내부의 이런 기류는 김 대법원장 취임 후 특히 심해졌다. 법원 노조는 취임 초부터 ‘사법 적폐 청산’을 외친 김 대법원장을 사실상 측면에서 도왔고, 김 대법원장은 지방법원을 돌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노조원들을 만났다. 그런 상황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합의들이 나왔다. 김 대법원장 임기는 다음 달 끝난다. 법원노조가 ‘오후 6시까지 재판’을 밀어붙인 데는 대법원장 교체 후에도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새 대법원장이 취임하면 법원노조의 이런 행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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