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광복회장 8·15 시론] 해방은 도둑처럼 오지 않았다

이종찬 광복회장 2023. 8. 15.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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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열들의 피나는 독립투쟁
함부로 폄훼해선 안돼
1919 임시정부, 건국은 아니지만
왕정 끝내고 민주공화정 선포
우리나라 역사는 중단된 적 없어
오늘은 광복절
선열 독립운동 되새기는 날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평소 전상인 교수의 글을 애독하고 있던 필자는 8월 11일 자 ‘조선칼럼’의 글 “1945년 8·15 < 1948년 8·15″를 읽으면서 그것이 동명이인이 쓴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어리둥절했다. 우선 팩트에 대한 인식부터 틀렸다. “광복회장이 상해임시정부에 의한 1919년 대한민국 건국설을 제기했다”는 진술이 그것이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필자가 상해 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하자는 주장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전에도 이미 존재해 왔다는 필자의 발언을 바로 찾을 수 있다.

나는 1945년 8·15와 1948년 8·15를 대립시키는 프레임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독립운동을 강조하면 좌파적이 되나? 1948년 건국론을 비판하는 사람을 ‘좌파’와 동일시하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단정 수립을 반대한 사람들이 모두 좌파는 아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라고 말한 사람을 누구라고 특정할 생각은 없지만, 1948년 건국론 비판자들을 그런 부류로 취급하면 안 된다.

필자와 내 주위 사람들은 누구도 1948년 8·15의 의의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1948년 건국론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 역시 1945년 8·15를 폄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해방이 ‘도둑처럼’ 찾아왔다니. 대한민국의 독립은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예고된 것이 아니었던가? 우남 이승만, 고하 송진우 등 지도자들이 일찍이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준비를 촉구하지 않았던가? 해방 정국을 직접 목격했다고 해서 발언의 특권을 누리고 싶지는 않지만,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그 시대를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 교수가 건국절 제정 논쟁을 해묵은 것이라 말한 것은 반갑게 들었다. 그런 해묵은 주장을 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다. 건국절을 제정하자고 하든 그렇지 않든,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발상을 공유한다. 일제 지배가 합법·유효했기 때문에 대한제국은 소멸했고, 대한민국이 신생국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이 이승만 대통령과 역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 입장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이미 지적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1882년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들어 미국을 압박할 정도로 조선-대한제국-대한민국의 계속성을 확고한 신념으로 했다. 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통령 자격으로 발언했고, 1948년을 대한민국 30년으로 표현했다.

우리나라 역사는 중단되지 않았다. 설령 일본이 강제로 점령했다 하더라도 나라는 있었고, 주권 행사가 어려웠을 뿐이다. 대한제국이 소멸되고 나라 전체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보는가? 아니다. 일본의 군사적 강점은 원천적으로 불법이고 무효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한편으로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우리 정부의 주장이다. 한일병탄에 이르는 일제와의 모든 조약이 원천무효라는 대한민국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한일기본조약에까지 반영했다. 이러한 사실은 이제 널리 알려졌기에 그에 반하는 1948년 건국론은 해묵은 주장이 됐다.

필자는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의 단체인 광복회의 회장으로서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대한민국의 원년으로 삼자고 제안했다. 신생국이 탄생했다는 건국론이 아니다. 왕정을 종식하고 민주공화정을 선포했음을 기념하자는 뜻이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넘어간 분수령이 1919년이란 주장이다. 독립선언이 있고나서 세계 곳곳에 임시정부가 세워졌다. 국무총리제가 가장 많았고, 대통령제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임시정부마다 행정수반은 이승만 박사를 모두 모셨다. 그중 하나가 4월 11일 상해에서 임시의정원을 소집, 국호를 대한민국이라 정했고, 헌장 1조에 민주공화제를 채택했다. 그해 9월 각지의 임시정부가 통합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출범했는데, 우리는 이를 ‘건국’이라 하지 않고 임시정부 수립이라 하고 있다.

앞에서 해방이 도둑처럼 찾아왔다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선열들의 피나는 독립투쟁을 폄훼하는 것을 넘어, 많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을 모독하는 말이다. 독립운동은 아무것도 이룬 게 없고 연합국의 승리로 거저 얻은 것인가. 오늘은 광복절. 우리 선열들의 피나는 독립운동이 대한민국의 오늘과 같은 발전에 기여한 대목을 함께 생각해보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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