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베스트셀러… 외솔 최현배의 저자 직강 교재였던 ‘우리말본’
독자 최상민(75·경기 안양)씨는 부산 동아대 국문과 1학년이었던 1966년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1894~1970)의 강의를 들었다. 일제시대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해방 이후 연희대학교(현 연세대) 부총장 등을 지낸 외솔은 1964~1966년 동아대 교수로 재직했다.
책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녀 ‘주보퉁이’라고 불렸다는 스승 주시경(1876~1914)처럼 외솔 역시 책보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최보퉁이’로 불렸다고 한다. 최상민씨는 “시험 범위 없이 강의한 모든 내용으로 시험을 봐서 공부하기가 힘들었다”고 기억했다.
최상민씨가 들었던 수업은 국어 문법 강의 ‘우리말본’이었다. 외솔의 저서 ‘우리말본’을 교재로 사용한 저자 직강이었다. 우리말본은 1937년에 처음 나온 뒤 해방 직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국어 문법서다. 최상민씨가 소장하고 있는 당시의 교재에는 ‘고친 박음 머리에’라는 제목의 개정판 서문이 있다.
단기 4283년(1950년) 날짜의 서문 아래에는 “고친 박음의 지형이 다 되자마자 6·25 사변으로 그만 타 버렸다. 이에 다시 기움을 더하여 새 판을 짜게 하였다”는 4287년(1954년)의 부연 설명이 있다. 외솔이 우리말본을 집필하면서 아내에게 “불이 나면 이 원고부터 옮기라”고 당부하고 마당에 독을 묻어 원고를 보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개정판 원고는 6·25 전쟁 당시 훼손을 피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서문이 오늘날과 같은 가로쓰기로 돼 있다는 점이다. 외솔은 저서 ‘가로쓰기 독본’을 남기는 등 한글 가로쓰기의 초석을 놓은 학자로도 평가받는다. 가로쓰기가 타자기 활용 등을 통한 한글 기계화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1950년대는 한글 가로쓰기가 정착되지 않았던 시기다. 정부가 공문서 전면 가로쓰기 방침을 채택한 것이 1961년이었다. ‘뿌리깊은 나무’(1976년 창간)를 비롯해 가로쓰기를 표방한 잡지들이 1970~80년대에 등장했고 일간지가 가로쓰기로 전환한 것이 1990년대였다. 오늘날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도 가로쓰기를 하고 있으니 외솔이 그만큼 시대를 앞서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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