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명 사망 하와이 산불 사전경고 묵살… 소화전서 물도 안나와
산불 대비 시스템 없어 대응도 부실
주 정부 늑장대처에 주민들 불만
韓정부, 26억원 규모 인도적 지원
“소방호스를 틀었더니 물줄기 대신 물안개가 나오고, 그마저 곧 끊겼다.”
8일(현지 시간) 미국 하와이주(州)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13일 기준 최소 96명이 숨진 가운데 당국의 대비 태세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와이 주정부는 “섬의 3분의 2 이상이 극도로 건조해 산불 위험이 높고, 대형 산불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에도 화재 대비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수년간의 경고에도 그간 대형 화재에 대한 별다른 준비 태세를 갖추지 않았다. 이번 하와이 화재는 ‘미국 내 100년 만의 최악의 화재 참사’로 기록되게 됐다.
● 사전 경고에도 “산불 위험성 낮음” 평가
마우이섬 정책위원회는 2021년 7월 ‘마우이 산불 예방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위원회는 마우이섬 당국의 운영을 검토해 정책 대안을 권고하는 자문기구다.
이 보고서에는 “마우이섬 전체가 가뭄이 심한 지역으로 지정돼 있다”는 언급과 함께 근래 발생한 대형 산불 사례들이 적시됐다. 이에 따르면 2019년 10월 서울 여의도(약 2.9㎢)의 6배가 넘는 면적(4600에이커·약 18.62㎢)을 불태운 산불이 났다. 2020년 7월과 8월에는 각각 4300에이커(약 17.4㎢)와 1835에이커(약 7.43㎢)가 산불로 인해 잿더미로 변했다.
위원회는 또 마우이섬 당국의 산불 진화 작업 예산을 검토한 뒤 “예산이 부족하다. 산불 대응에 필요한 비용이 증가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마우이섬 소방안전국이 발표한 5개년(2021∼2025년) 전략 계획에 대해선 “화재 예방을 위해 해야 할 조치가 어떠한 것도 포함돼 있지 않다. 화재 예방 계획을 평가하는 기준도 없다”고 꼬집었다.
2021년 1월 하와이 당국은 지역사회를 위협하는 요인에 대한 자체 평가를 담은 ‘2021 하와이 THIRA’ 보고서에서 “허리케인과 결합된 화재는 특히 위험하다”며 긴급 구조대와 소방관 대응 여력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번 마우이섬 산불도 허리케인 ‘도라’를 타고 빠르게 번지며 섬 전체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하와이 당국은 이 같은 안팎의 사전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 방재청이 지난해 2월 종합방재계획에서 산불로 인한 인명 피해 가능성을 ‘낮음’으로 평가하며 별다른 대응 태세를 갖추지 않았다. 미 CNN은 “하와이 당국이 산불을 예방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불의 위험을 과소평가했다”고 분석했다.
● 소방호스 물 안 나와 소방관들 맨몸 구조
대비 시스템의 부실은 고스란히 화재 대응 부실로 이어졌다. 특히 마우이섬의 수도 시스템이 화재에 취약해 산불 초기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소방관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13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현장에 출동했던 여러 명의 소방대원은 “소화전에 호스를 연결했지만 수압이 너무 약해 불을 끌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소방관들은 소방호스를 내던지고 불에 갇힌 주민들을 구조하기 위해 맨몸으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피해가 가장 큰 라하이나로 출동했던 소방관 케아이 호 씨는 “아수라장이었다. 불이 번지는 와중에 집 안으로 들어가 주민들을 구조했다”고 전했다.
소방 인력도 크게 부족했다. 하와이소방관협회 보비 리 회장은 “마우이와 몰로카이, 라나이 등 3개 주요 섬을 담당하는 상근 소방관이 65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12일 AP통신에 전했다. 그는 “소방차는 13대, 사다리차는 2대에 불과하고 비포장도로용 차량은 전혀 없다. 이는 산불이 인구밀집지역에 도달하기 전에 불길을 잡을 수 없다는 걸 뜻한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늑장 대처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NYT는 “주민 1418명이 긴급대피소에 머물고 있는 등 이재민 수천 명이 발생했지만 자원봉사자들이 조달한 식수, 식료품, 연료에 의존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 수는 96명이지만 피해 지역의 3%만 수색이 이뤄진 상황이라 희쟁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정부는 14일 하와이에 200만 달러(약 26억 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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