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롤스로이스’와 경찰의 태도

신지인 기자 2023. 8. 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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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롤스로이스 피의자 신 모씨가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위험운전치상) 혐의 관련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후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지 5개월, 경찰은 마약 운전자를 단 하루 만에 석방했다. 지난 2일 강남 압구정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하고,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 보행자를 친 신모(28)씨 사건이다. 경찰이 신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아예 검토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당시 경찰 내부에서는 이런 말이 오갔다. “피해자 수술도 무사히 끝났다고 하니 영장 신청해도 기각될 것이다.” “일단 석방 뒤에 증거 모으는 게 낫다.” 범죄 중대성이나 피의자 도망 우려를 고려한 것이 아닌, 검찰 ‘눈치 보기’의 결과였다.

신씨에 대한 경찰의 태도는 총 3번 바뀌었다. 사고 직후 현행범 체포된 신씨는 3일 석방 전까지 ‘교통사고범’ 신분이었다. 마약 간이검사에서 케타민 양성 반응이 나온 데다 비틀거리는 모습이 보였고, 사고 직후 3분이나 현장을 떠나 있었어도 경찰에게 그는 보통의 교통사고 피의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7일이 되어서야 신씨는 ‘약물 운전자’가 됐다. 다른 병원에서도 마약류를 투약한 사실을 확인한 경찰이 신씨에게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신씨가 다른 약물을 투약했다는 결과를 받아든 경찰은 신씨 혐의에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위험운전 등 치사상)’ 위반을 추가했고 9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단순 교통사고범이 일주일 만에 약물에 취한 ‘뺑소니범’이 된 것이다.

같은 경찰들도 이 사건을 두고 왜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다른 경찰서의 한 경정은 “현장을 벗어났던 점, 적극적인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던 점, 약물에 취해 사고를 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 점으로 미뤄볼 때 구속 요건이 충분히 성립된다”고 했다.

구금된 채 조사를 받고 있는 신씨는 피의자 조사에서 고개를 못 든 채 “잘못했다” “죽을죄를 지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석방 이후 8일 동안 구치소 밖에서 신씨가 보인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그는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또 그러면서 “경찰이 말하길 내가 적극 구호 조치를 했다더라”고도 했다. 영상이 나오고 경찰은 하루 만에 “개인의 주장일 뿐 사실이 아니다”라고 공개 반박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번 주 안으로 신씨의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신씨의 범행에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많다. 여드름 치료를 받으러 갔던 신씨가 어떻게 마약류를 투약할 수 있었는지, 병원은 왜 처방을 내려준 것인지 밝혀져야 한다. 사고 이후 보름 가까이 20대 여성 피해자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지방에 있는 가족은 매일 상경해 병원에 있는 딸을 보살피고 있다. 가족들도 눈치 보는 경찰이 아닌, 할 일 하는 경찰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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