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9] 하나님의 계획
1990년대 초 어느 한국 소설에서 이런 내용을 읽은 기억이 있다. ‘밤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야경은 붉은 십자가들로 가득한 공동묘지 같다.’ 시니컬한 작중 주인공의 말이기는 해도 억지만은 아니라고 나는 느꼈다. 수많은 작은 교회도 그렇지만, 요즘도 별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 문득, 화려한 대형 교회 두 곳이 오십 미터도 채 안 떨어져 있는 풍경과 마주치면,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상에 젖게 되는 건 기독교 신자든 아니든 비단 나만은 아닐 듯싶다.
한국 사회는 ‘종교 백화점’이다. 유교,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샤머니즘을 비롯한 온갖 종교가 이렇게 ‘폭력 없이’ 공존하는 나라는 전 세계 종교 분포도(分布圖) 위 어디를 찾아봐도 오직 대한민국뿐이다. 나는 젊은 시절에 비해 이런 현상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 저 종교들의 시스템이 없다면, 근대인의 소양과 현대적 국가 의식이 부족한 한국인들 내면에 들끓고 있는 ‘어둠’은 이나마도 관리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좀 있다 해도 어쨌거나 한국 사회의 종교적 포화 상태는 손해보다는 이득이 많다는 게 내 사회학적 견해다.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게 된 통일 대한민국을 그린 내 책들 속 암울한 사회상에 기겁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감당이 안 되는 것들은 아예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는 인간의 심리를 본다. 자신의 머리맡에 북핵을 두고도 잠만 잘 자는 노릇처럼. 나는 반(反)통일주의자가 아니다.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징비록(懲毖錄)’을 ‘미리’ 쓴 한 작은 작가일 뿐이다. 나 따위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건, 블랙코미디같이 와서 자연 재난처럼 몰아치게 될 통일 대한민국은 이제 도덕적 당위이자 과학적 일정(日程)으로서 다른 경우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이를 대체 어찌할 것인가?’ 애국자도 아닌 주제에 나는 이 질문에 강박증이 걸려버린 환자다. 그러다 불현듯 저 소설의 저 대목이 생각났다.
한국 교회들이 통일 이후 재력과 인력을 총동원하여 그리스도의 말씀 따라 이북에서 내려온 동포들을 먹이고 재우고 교육하는 사랑을 실천한다면, 국가의 능력으로는 미처 감당하지 못할 여러 난제를 해결하여 끔찍한 비극을 막을 수 있을 텐데. 그뿐인가. 자연스레 포교가 이뤄질 테니 한국 개신교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더욱 세가 확장되고 몇몇 부정적인 면모가 그 뿌리부터 일신될 것이다. 신의 뜻을 깨달으려면 시간과 시련이 필요한 법이다. 이게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저 소설 속 우울한 주인공이 비아냥거리는 붉은 묘지는 붉은 묘지가 아니라 신약성서 그 자체가 될 것이다. 부디 한국 교회는 이러한 사랑과 희망의 대역사에 대한 ‘준비’를 ‘실천’해주시길 기도한다. 예수님은 그래서 우리 곁에 오셨던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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