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36] LK-99와 아카이브

한국 퀀텀에너지연구소 연구원들이 개발한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에 대한 검증이 계속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의 연구가 학술지가 아니라 미출판 원고를 심사 없이 올리는 인터넷 아카이브(ArXiv)에 공개되었다는 것이다. 아카이브는 1991년에 입자물리학자들이 인터넷을 이용해서 연구 결과를 교환하려고 만든 사이트였다.
2000년대 초반에 실험물리학을 하는 연구자들이 아카이브에 합류했고, 2015년에는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적극적으로 논문을 올리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생물학자들과 의과학 연구자들은 독자적인 아카이브(bioRxiv, medRxiv)를 만들어서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연구를 공유했다. 지금까지 아카이브에 올라간 논문은 200만 편이 넘고, 매년 성장하고 있다.
아카이브에 논문을 올리면 자신의 연구에 대한 즉각적인 우선권을 보장받는다. 학술지에 투고하면 심사받고 게재할 때까지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흔하고, 그 사이에 비슷한 연구가 출판되거나 아이디어가 유출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반면에 아카이브에 투고하면 간단한 스크리닝을 거쳐서 하루나 이틀 뒤에 인터넷에 논문이 올라간다. 동료들의 평가나 코멘트도 거의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지식의 순환과 축적이 학술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
아카이브는 비싼 돈을 내고 논문을 출판해야 하는 학술지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악용될 여지도 있다. 1989년 S. 폰즈와 M. 플라이슈만이 상온 핵융합을 구현했다고 공표할 때 논문이 아닌 기자회견을 이용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황우석은 연구 부정이라고 밝혀진 2005년 사이언스지 논문이 나오기 전에 미국에서 기자회견부터 했다. 최근에는 기자회견 대신에 아카이브에 논문을 올리고,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기 전에 이를 언론에 뿌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아카이브에 막 올라간 논문은 아직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지 않은 것임을 기억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주의 이제는 국가유산] [52] 장엄하고 아름다운 종묘제례악
- [경제포커스] BIS의 신현송, IMF의 이창용
- [이응준의 과거에서 보내는 엽서] [64] 이승만과 태평양
- [전문기자의 窓] 10월 폐지 전, 이미 파산한 검찰
- [이대화의 함께 들어요] [39] 궤도 밖 청춘들을 위한 찬가
- [서아람의 법스타그램] [7] ‘마담뚜’는 없다, 서초동 로맨스
- [천현우의 세상 땜질] 청년 숙련공 육성 안 하면 제조업 현장 붕괴된다
- [리빙포인트] 녹슨 가위에는 토마토 케첩
- [오늘의 날씨] 4월 30일
- 정이한 부산시장 후보에 음료 투척 30대 구속영장 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