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92] 태초의 춤
태초의 인류가 춤을 췄다면 이랬을 것이다. 다섯 사람이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서서 빙글빙글 돌면서 덩실덩실 들썩이고 펄쩍펄쩍 뛰어오른다. 탄력 있는 선으로 단순하게 그려낸 선홍색 몸만 봐서는 이들의 성별이나 나이를 정확히 판별할 수 없다. 처음부터 옷이라는 걸 몰랐던 이들은 서로의 벌거벗은 몸이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으니 어떻게 몸을 놀려도 거리낌이 없고 그저 흥이 넘친다. 이들의 세상에는 신전도 궁궐도 없이 온통 초록 들판과 파란 하늘뿐이다. 여기가 지상낙원이라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이렇게 춤을 추면 거기가 지상낙원이 된다.
이 그림은 1910년 제정 말기 러시아의 대부호이자 미술 컬렉터였던 세르게이 슈추킨이 모스크바의 대저택을 장식하기 위해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에게 주문한 한 쌍의 그림 중 하나다. 다른 한 폭에서는 다섯 명이 같은 배경에 차분히 앉거나 서서 악기를 연주하고 듣는다.
법학을 공부한 마티스는 법원에서 일하다 뒤늦게 화가가 됐다. 반 고흐를 비롯한 당대 인상주의 화가들의 영향을 받아 현실과 동떨어진 파격적인 색채를 쓰기 시작했지만 갑작스레 가세가 기울면서 청년 가장이 된 다음에는 잘 팔릴 법한 얌전한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게 슈추킨이다. 미술에 있어서 진보와 혁신을 누구보다 빨리 감지하고 확신했던 슈추킨은 대중이 외면하던 마티스의 초기작을 대범하게 사들였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그의 컬렉션은 국가가 몰수했고 그나마 스탈린 집권 후에는 부르주아 예술이라며 공개도 하지 않았다. 슈추킨은 여생을 파리에서 보냈다. 현실의 진보와 혁신은 그의 예상보다 거칠고 잔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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