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 연출 "5시간 연극 볼 이유? 본성 흔드는 강력한 드라마"[문화人터뷰]
200쪽 넘는 대본…"처음 받아들고 전율"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2500년 가까이 살아남은 극이에요. 강력한 드라마가 있고, 인간 본연의 본성을 흔드는 힘이 있죠."
김정 연출가는 5시간이 넘는 연극 '이 불안한 집'을 관객들이 찾아야 할 이유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이 작품을 해외 화제작으로 소개하는 국립극단에서도 역대 최장 시간 공연이다.
오는 31일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이 불안한 집'은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인 아이스킬로스가 만년에 내놓은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영국 극작가 지니 해리스가 쓴 작품이다. 2016년 영국에서 초연했고, 국내에서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 연출은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스튜디오 하나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전율했다"며 "헛웃음이 날 정도로 잘 써진 대본이었다"고 말했다.
"수원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의 두 시간 동안 3부작을 한 번에 읽었어요. 그 자체가 놀라웠죠. 개인적으로 이런 강렬한 작업이 오기를 기다렸어요. 1~2년 전부터 희랍극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됐네요. 책임감도 큰데, 제가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처럼 선물 같은 작품이 되길 바라면서 만들고 있어요."
그는 지금 이 작품을 하는 이유로 "긴 호흡을 가진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사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원작(고전)의 틀을 지키면서 동시대의 의미도 놓지 않고 있는 작품"이라며 "이 작품이 2023년 한복판에서 공연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원작은 사랑하는 딸을 제물로 바친 아가멤논 왕가에서 펼쳐지는 가족 간의 분노와 반복되는 참혹한 복수를 담았다.
1부는 전쟁의 승리를 위해 딸 이피지니아를 제물로 바친 아가멤논으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그리고 아가멤논을 향한 그의 아내 클리템네스트라의 분노와 복수로 이어진다. 2부는 부모로부터 뿌리내린 혼령의 끔찍한 저주에 괴로워하는 엘렉트라가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를 살해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3부는 지니 해리스가 현대적 감각을 입혔다. 새로운 인물 오드리도 추가됐다. 현대적인 병원으로 배경이 옮겨지고 엘렉트라는 정신과 의사 오드리의 환자로 등장한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오드리는 엘렉트라를 진료하며 자신의 트라우마와 마주하고, 두 사람은 과거의 환영에 시달리며 극은 절정으로 향한다.
현대로 시간을 되돌리는 3부가 김 연출에겐 아직 숙제다. 그는 "3부는 갑자기 현대로 넘어온다"며 "1, 2부와 3부의 연결고리를 계속 찾고 있다"고 말했다.
"1부는 왕을 살해하고 체제를 무너뜨리는 사건이고, 2부는 부모 살인으로 가족을 벗어나요. 3부는 내가 당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거죠. 1, 2부에서 복선을 깔고 3부에서 퍼즐이 맞춰지는 거예요. 3부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게 느껴질 수 있는데 1, 2부가 3부를 위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죠."
의상이나 무대도 각 파트에 맞는 변화를 줄 예정이다. 김 연출은 "1부는 과거 그리스 시대를, 시간이 흐른 2부에선 세대가 바뀐 느낌을 주고 싶었다. 3부는 현대의 의상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대는 5시간을 소화할 수 있는, 효율적이면서 많은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중요하다. 도형적이면서 기울기가 있는 무대가 나올 것"이라며 "마음껏 놀 수 있는 판이 돼야 한다. 관객들이 예상한 것보다는 미니멀한 무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5시간에 달하는 공연 시간만큼 267쪽의 대본에 대사량도 방대하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 15명이 코러스를 포함해 27개의 배역을 나눠 연기한다.
배우 중 최연장자로 네 개의 배역을 맡은 곽은태는 "처음에 대본을 3권 주길래 세 작품을 하나 싶었다. 지금까지 120쪽 정도 대본이 가장 길었는데, 200쪽이 훌쩍 넘는 백과사전 다음으로 두꺼운 대본을 받고 부담도 됐다"며 "하지만 한번에 대본을 읽었고, 그만큼 매력이 있었다"고 전했다.
엘렉트라 역의 신윤지는 "5시간 공연에 시작 전에는 걱정이 많았는데, 연습을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레 몸에 익히게 됐다. 첫 리딩 땐 과연 할 수 있을까 의문도 들었는데, 지금은 그걸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연출은 "개성 있는 배우들로 구성돼 있다. 배우의 역량만으로도 꽉 차는 무대를 보여주겠다"며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잘 만들어 보겠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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