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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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7년 함께 산 남편을 남편 사후에도 70년을 홀로 그리워하는 게 가능할까?
국민화가 이중섭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 여사의 삶을 보고 떠올랐던 의문입니다.
마이니치 신문 전 서울 특파원 오누키 도모코도 같은 의문을 가졌죠.
그는 서울특파원으로 있던 2016년 6월 덕수궁미술관에서 개최한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에 갔다가 이중섭과 그의 일본인 아내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한국 부임 4년차, 한일관계는 날로 경색되고, 그를 취재하던 오누키도 피로감을 느꼈는데,
이 이야기가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고 하네요.
그는 전시 외에 이중섭 부부의 삶을 추가취재했고,
이를 2016년 11월 신문에 보도합니다.
이를 보고 쇼가쿠칸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연락이 왔고,
본격적으로 이중섭 부부의 삶을 취재해 책을 냈다는군요.
이번에 한국에 소개된 책 제목은 ‘이중섭, 그 사람’.
이중섭과 1945년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6.25 전쟁중 생계 때문에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귀국,
70년을 남편을 그리워하면서 살았던 야마모토 여사와의 인터뷰가 주를 이룹니다.
오누키는 이 작업을 통해 세상에는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행복’도 있다는 걸 깨달았답니다.
그런 행복,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요.
7년을 살고 70년을 홀로 그리워한 삶이 대단하다고 했더니,
제가 아는 사람이 그러더군요.
“7년을 살았기 때문에 70년을 그리워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70년을 함께 살았다면 7초도 그리워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아요.”
과연 그런가요?
오누키 도모코와, 이번에 같은 출판사에서 이중섭의 편지 그림을 연구한 책 ‘이중섭, 편지화’를 낸
미술사학자 최열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7년 함께 살고, 70년을 홀로 남편 그리워한 ‘이중섭의 最愛’
“태풍은 관동 연안에 근접해서 상륙할 수도 있다고 예보됐더랬다.
비와 바람이 맹렬했다. 문어 모양 미끄럼틀 아래 터널에 있어도 그 소리는 무시무시했다.”
태풍 카눈이 지나가던 밤,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소설 ‘태풍이 지나가고’(민음사)를 읽었습니다.
2016년 발표한 동명의 영화를 소설로 다시 썼다고 하네요.
원제는 ‘海よりもまだ深く'.
주인공 료타는 한 때 촉망받는 소설가였지만 현재는 흥신소에서 일합니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복권을 긁으며 ‘한 탕’을 꿈꿔보지만 어림 없지요.
태풍이 몰아친 9월 어느날, 료타는 우연히 전처와 아들, 어머니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소설의 주제의식은 전처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신경 쓰는 료타에게
흥신소 소장이 하는 이 말에 녹아 있습니다.
이제 가족이랑 만나는 건 그만둬.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를 가져야 다 큰 남자라는 거다.
誰かの過去になる勇気を持つのが、大人の男ってもんだよ。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해 방황하는 료타에게 어머니는 조언합니다.
행복이라는 건 말이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잡히지 않는 거야
幸せってのはね、何かを諦めないと手にできないもんなのよ
태풍이 지나간 아침, 부러진 나뭇가지며 망가진 우산과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렸지만,
녹색 잔디는 비와 바람에 씻겨 싱그러워집니다.
태풍이 세상의 표정을 바꿔놓은 것처럼, 료타의 마음도 변화합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전처가 결혼하면 아들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때, 저항하는 것은 그만두자. 그렇지만 내가 준 복권을 아들이 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복권은 도박”이라는 전처에게 료타는 정색하며 말했거든요.
도박이 아니야. 꿈이지. 삼백 엔으로 꿈을 사는 거야.
상처를 남기지 않고 지나가는 태풍은 없지만
‘희망’이 그 상처를 치유하리라고,
고레에다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태풍이 지나간 후, 여러분 마음 속 풍경은 어떠한가요?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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