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만원 빼앗아 군자금으로'…영화 모티브 된 8월의 독립운동가
'간도 15만원 사건' 주역들, 8월 독립운동가 선정
고려인 작가 소설로…훗날 영화 '놈놈놈' 모티브로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1921년 8월 25일.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스러져 간 세 청년이 있었다. 윤준희(1895-1921), 임국정(1896-1921), 한상호(1900-1921). 27세, 26세, 22세 꽃다운 나이에 순국한 이들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간도 15만 원 사건'의 주역들이다.
간도 15만 원 사건은 '철혈 광복단' 소속이었던 한인 청년들이 1920년 1월 4일 북간도 룽징촌(龍井村·용정촌) 동량리(東梁里) 어구에서 조선은행의 현금수송대를 습격해 15만 원을 빼앗아 달아난 일을 말한다. 15만 원은 당시 소총 5000정과 탄환 50만 발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 김좌진 장군이 이끌던 북로군정서군이 갖췄던 소총이 1300정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거금'이었다. 이들이 체포되지 않았다면, 그 돈이 청년들의 계획대로 무기 구매와 사관학교 설립에 고이 쓰였다면, 1920년대 이후 만주지역 독립군 무장 투쟁은 일대 전환기를 맞았을 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이 이들을 제대로 기념한 건 해방이 되고도 20여년 후다. 세 청년의 무덤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도 황량한 공동묘지에 방치돼있었다. 유가족 등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1966년 11월 24일에 이르러서야 이들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순국한 지 45년 되는 해였다. 국가보훈부는 지난달 31일 윤준희·임국정·한상호, 그리고 '15만 원 사건' 연루자로 지목돼 피살된 김강 선생(미상-1920)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열혈 청년들의 계획적 무장투쟁 '간도 15만 원 사건'
"총을 쥐고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이제는 아이들께두 다 있다. 좋다. 그런데 총을 어디서 얻겠는가 말이다[윤준희]....돈만 있으면 로씨야 오연발 총과 단총을 얼마든지 살 수가 있어....백파들도 팔아먹고 전쟁판에서 총을 맨체 집으로 돌아 온 군인들도 팔더라[임국정]. 그런데 돈을 어디서 얻겠나?....상점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용정일본 은행을 털자[윤준희]...."
-역사 장편 소설 '십오만원 사건' 中-
한일합병(경술국치)을 이뤄낸 일제는 강력한 무단통치로 민족 문화를 말살했다. 철저한 경제적 지배로 저항의 기반도 없애려 했다. 국내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할 수 없게 되자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만주와 연해주 등으로 망명해 민족독립운동 기지를 세웠다. 특히 반일무장단체는 한민족 이주민의 중심지로 성장한 간도 지역, 그 중에서도 특히 옌지(延吉·연길)와 룽징에서 왕성하게 전개됐다.
1919년. 조선인에게 더 없이 엄혹한 시기였다. 일제는 맨손에 태극기만 들고 나섰던 3·1 만세 운동의 군중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용정 시내에서의 3·13 만세 운동이 무력에 유린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조선인 사회의 가슴에 항일 무장 항일 투쟁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윤준희·임국정·한상호도 간도에서 수학하며 민족의식을 길러 온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1910년대 북간도에서 조직된 비밀결사인 광복단과 러시아 연해주에서 조직된 철혈단이 통합해 1918년 결성된 단체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 소속이었다. 단원 수는 1920년 초 1300여명에 달했다.
독립전쟁을 치르려면 무엇보다 군자금이 절실했다. 비밀리에 모여 돈을 마련할 방안을 강구하던 윤준희 등은 러시아 연해주 대한국민의회 소속 간부 김하석의 지도 하에 '은행털이'를 결심하게 된다. 1919년 12월 최계립과 윤준희는 미리 포섭한 조선은행 용정출장소 사무원 전홍섭을 통해 1920년 1월 4,5일쯤 조선은행 회령지점으로부터 용정지점까지 현금 수송이 진행될 것이라는 정보를 얻어냈다.
윤준희, 임국정, 한상호, 최계립, 박웅세, 김준. 6명의 한인 청년들은 1920년 1월 4일 현금수송대를 호위하던 일경 4명 중 1명을 사살하고 15만 원을 탈취하는 데 성공한다. 우발적으로 벌인 일이 아닌, 철혈광복단 청년들이 철저히 계획해 달성한 독립전쟁의 쾌거였다. 이 사건은 의로운 목적으로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적의 금융기관이나 수송로를 직접 공격하는 식의 적극적인 방법이 있음을 보여 준 '의열투쟁의 모범사례'가 됐다. 또한 1919년 국내 3·1운동, 1919년 간도 3·13 만세운동으로 대표되는 비폭력 독립운동과 1920년 6월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전투, 같은 해 10월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전투 등 무장 독립투쟁을 이어주는 의미를 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밀고로 스러진 청년들의 독립전쟁
윤준희·임국정·최계립·한상호는 무사히 간도를 탈출해 1월 2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다. 무기 구매와 사관학교 건립, 신한촌 내부에 신문 발간, 도서 출판을 위한 사무소 건물 매입 계획 등 구체적인 자금 사용 계획도 세웠다. 무기 구매를 담당한 임국정은 러시아 무기고 책임자와 소총 1000자루, 탄약 약 100상자, 기관총 10문을 약 3만2000원에 거래하기로 합의했다. 이때까지 상황은 순조로운 듯 보였다.
그러나 범인찾기에 혈안이 된 일제의 집중적인 수사가 포위망을 좁혀왔다. 우선 전홍섭을 체포한 일제 당국은 거사 주동자들의 대략적인 신상을 파악했다. 결국 꼬리가 잡혔다. 임국정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무기 구매를 의뢰했다는 정보가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영사관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일본 측에 정보를 전달했던 '밀정'은 임국정과 러시아 사이에서 무기거래를 주선했던 중개인이자 과거 홍범도와 의병활동을 함께했던 엄인섭으로 알려져있다.
1월 31일 새벽에 일본 경찰 1개 소대가 블라디보스토크 한인촌인 신한촌에 난입했다. 최계립은 도주에 성공했지만 윤준희·임국정·한상호는 붙잡히고 말았다. 체포부터 사형 선고된 최종심까지는 불과 1년 2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살아남은 최계립은 러시아로 이주해 무장투쟁을 계속했고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에도 가담한다.
◆'15만 원 사건'과 주역들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빛을 되찾은 날이라 불리는 8월 15일 광복절. 어둠을 밝히려 스스로를 태웠던 무수한 이들을 기억해야 하는 날이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려 윤·임·한 선생에겐 1963년, 그리고 김 선생에겐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했다. 최계립 선생엔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들의 장쾌한 거사는 훗날 한국 영화 '쇠사슬을 끊어라(1971)', '놈놈놈(2008)'의 모티브가 됐다. 변절자 엄인섭의 이야기도 영화 '밀정(2016)'으로 재탄생한다.
15만 원 사건은 카자흐스탄 고려인 작가 김준에 의해 '잊지 못할 이야기'로 남아 있다. 작가 김준(1900-1979)은 사건 주동자 중 한 명인 김준과는 다른 인물이다. 그는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된 최계립의 증언을 바탕으로 1964년에 장편소설 '십오만원 사건'을 펴냈다. 최계립도 1959년 회고록 '간도 15만 원 사건에 대한 40주년을 맞으면서'에 알려지지 않았던 철혈 광복단의 조직과 활동, 사건 후의 향후 계획, 일제에 의한 동지들의 체포 등에 대한 소상한 기록을 남겼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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