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길진균]일상화된 與野의 무책임 정치가 낳은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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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국민께 피해를 끼쳐 송구스럽습니다."
'결과적'이라는 단서를 붙였다는 점에서 좋은 사과의 예시라고 할 순 없다.
'결과적 책임'이 보여주는 정치의 책임성, 반응성의 구현 여부는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르는 핵심 내용들이다.
관료는 본인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선출된 정치인의 책임하에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능력을 평가받고, 정치인은 그가 추구하는 것에 대해 결과적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주의와 관료 시스템의 작동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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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결과적으로 키운 관료 복지부동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사과의 표현이다. ‘결과적’이라는 단서를 붙였다는 점에서 좋은 사과의 예시라고 할 순 없다. 면피성 의미가 엿보이지만 사과의 뜻이 분명하다면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그래도 국민의 질타를 인정했다는 뜻이고, 나아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책임의 의미까지 내포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에선 ‘결과적 책임’이라는 말 조차도 잊혀진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관련된 행복청장 인사 조치에 대해 보름째 묵묵부답이다. 메시지가 줄 의미는 명확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이태원 참사 책임 논란과 마찬가지로 법적 책임이 명확하지 않다면 정무직 자리에 대해서도 결과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 책임을 외면하는 모습은 야권에서도 볼 수 있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 패배에 이어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은 지방선거까지 참패하고도 다시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권을 쥐었다. 패배한 리더는 잠시라도 현실 정치를 떠났던 과거 사례와는 달랐다. 결과적 책임에 대해 측근들은 “책임감을 갖고 더 충실히 일하겠다”는 엉뚱한 해명을 내놨다.
‘결과적 책임’이 보여주는 정치의 책임성, 반응성의 구현 여부는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르는 핵심 내용들이다. 이제 여의도에선 잘못이 비교적 명확한 문제까지 한사코 부정하는 ‘몰염치’의 언행이 만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치의 퇴보다.
위기의 근원은 어디일까. 30년 넘게 누적돼 온 승자독식 구조 탓이 크다. 한 표라도 더 얻는 후보 또는 정당이 권력을 독점하는 현실 속에서 가장 큰 명제는 ‘승리’다. 표의 득실을 따져볼 때 정치윤리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기보다는 상대를 문제를 야기한 거악(巨惡)으로 몰고 이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는 것이 더 남는 장사라는 계산이다. 한 중진 의원은 “예전엔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절대적인 선이 있었다. 지금은 다른 목소리를 내면 ‘전쟁 중에 적을 돕는 배신자’ 취급을 받는다”고 했다.
총선을 8개월 앞둔 여야는 격렬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실 건축물, 교권 침해,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난맥상 등 사회의 주요 사안이 모두 정쟁의 장이다. 반목과 책임 떠넘기기가 정치의 ABC가 됐다. 국제적 망신을 산 세계잼버리대회까지도 ‘내 책임’에 대해선 입을 꾹 닫고, ‘다른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만 따지는 정쟁이 됐다.
책임지지 않는 정치는 결국 다른 희생양을 필요로 하게 마련이다. 일부 공무원들과 관료 시스템이 타깃이 되는 모양새다. 관료는 본인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선출된 정치인의 책임하에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능력을 평가받고, 정치인은 그가 추구하는 것에 대해 결과적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주의와 관료 시스템의 작동 원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같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책임질 공무원을 징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상위 개념인 정치의 결과적 책임은 외면하고 있다. 정무직 고위 인사들에 대한 책임 면탈 속에 ‘적극 행정’과 동시에 엄중한 책임을 요구받고 있는 직업 공무원들은 허탈과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책임질 일을 적극적으로 회피하는 것이 ‘적극 행정’이라는 ‘웃픈’ 얘기까지 공무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여야의 극단적 대립 구조가 낳은 책임지지 않는 정치가 결과적으로 관료 시스템까지 훼손하고 있다. 누구도 “내 탓이오”를 말하지 않는 실패한 정치가 민폐를 쌓고 있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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