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저커버그 격투 대결 ‘노이즈 마케팅’으로 끝나나[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
세계적인 갑부이자 빅테크 기업 거물들인 일론 머스크(52)와 마크 저커버그(39) 간의 종합격투기 대결을 둘러싼 소란이 계속되고 있다.
전기자동차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X’(옛 트위터)의 소유주인 머스크는 11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거느린 메타의 CEO 저커버그와의 격투기 대결 장소를 이탈리아에서 물색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X를 통해 이탈리아 측과 ‘장엄한 장소’에 대한 합의를 마쳤다며 고대 검투사 간 대결의 느낌이 들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에 대해 저커버그는 X의 대항마 격이자 메타가 새로 출범시킨 SNS인 ‘스레드’를 통해 “대결 날짜가 정해지기 전에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은 합의된 게 아니라고 보면 된다”고 직격했다. 13일에는 “머스크가 대결 날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나에게 어떻게 연락해야 할지 알고 있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라고 적었다. 자신이 먼저 26일을 결투일로 정하자고 제안했지만 머스크가 각종 부상을 이유로 대결 날짜를 확정하지 않고 있는 점과 관련해, 자신은 진지하지만 머스크가 온갖 핑계로 실제 대결을 미루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 대결은 SNS계의 주도권을 놓고 대결하는 기업 수장들 간의 감정과 자존심 싸움이다. 저커버그가 격투기인 주짓수를 익히고 있지만 머스크는 실제 싸움으로도 저커버그를 이길 수 있다는 식으로 도발했고 이에 저커버그가 응수하면서 현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저커버그는 과거에도 스포츠와 관련돼 언급된 적이 있다. 주로 그가 고등학교 때 펜싱 선수였다는 점이 거론됐다. 포천 500대 기업 CEO의 95%가 대학생 때 스포츠 활동을 했다는 조사 등과 함께 저커버그의 스포츠 활동도 함께 거론되는 식이었다. CEO들의 스포츠를 다룬 내용들은 주로 그들이 스포츠를 통해 육체적 정신적 강함을 골고루 갖추어 왔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고의 거물들이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언사들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둘 사이의 설전과 대결 자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머스크는 블룸버그 기준 지난달 세계 부자 1위, 저커버그는 9위에 올랐다. 머스크의 재산은 300조 원, 저커버그의 재산은 100조 원이 넘는다. 이번 대결의 특징은 재산과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음이 드러난 거친 대결 욕구의 적나라한 표출이다.
머스크는 “문명화된 전쟁”이라는 표현을 썼다. ‘전쟁’이라는 말 속에 담긴 대결의 강렬함과 ‘문명화’라는 말 속에 담긴 규칙 및 그에 따른 야만성의 제어를 표현하려 한 모양인데 이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현대의 스포츠다. 이런 장치가 있기에 둘의 감정싸움이 마냥 야만적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머스크 자신도 믿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머스크가 어떻게 싸울지 지켜볼 일이다. 그가 스포츠 정신을 갖고 이번 일을 마무리한다면 이런 소동과 감정싸움이 촉발한 원초적 대결 본능이 스포츠의 페어플레이 정신 속에 수렴되는 결말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발언들의 속내는 의심스럽다. 대결 날짜를 특정하지 않고 화제를 길게 끌며 부풀려 가기만 하는 모습에서 이 대결을 둘러싼 소동에 깔린 저의를 의심하게 된다.
최근 트위터를 X로 개명한 머스크나 스레드를 출범시킨 저커버그나 모두 회사의 인지도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이 소동을 통해 눈길을 끈 X와 스레드 모두 막대한 글로벌 홍보 효과를 얻은 건 분명하다. 이날 발언으로 저커버그가 이 대결에서 슬슬 발을 빼려 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얻을 건 모두 얻은 두 사람이 대결을 지금 그만두어도 손해 볼 건 없다. 처음엔 원초적 대결 본능에서 출발한 듯했지만 두 사람 모두 이 상황을 의도적인 소란을 통해 눈길을 끄는 노이즈 마케팅 도구로 활용한 측면이 있다.
이제 대결 날짜 확정을 촉구하는 저커버그에 대한 머스크의 반응에 따라 이 대결의 성사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일으킨 소동이 체면 따윈 버리고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 노이즈 마케팅으로만 끝날지 아닐지는 그들 하기 나름이다. 끝을 맺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겠지만 그들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기왕이면 사회에 좀 더 좋은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끝났으면 한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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