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서점들, 체제에 순응하지 않은 작가의 집결지

한겨레21 2023. 8. 14.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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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책방 기행]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펴낸 파리의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앨런 긴즈버그 <울부짖음> 펴낸 샌프란시스코의 ‘시티라이트’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펴낸 프랑스 파리의 서점 ‘셰익스피어앤컴퍼니’. 한미화

프랑스 파리에 다녀왔다고 하자 “셰익스피어앤컴퍼니(Shakespeare & Company) 도 갔나요 ?” 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 이곳이 파리를 대표하는 서점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 서점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 센강 왼쪽 기슭의 생미셸 다리 근처에 관광객들이 줄 서 있는 곳이 셰익스피어앤컴퍼니였다. 조앤 롤링이 <해리 포터>를 집필할 때 영감받았다는 포르투갈 포르투에 있는 렐루서점은 여행자들이 몰리자 입장료를 받는다지만 셰익스피어앤컴퍼니는 아직 무료입장이다. 물론 대기줄은 필수고 서점 내부 촬영은 금지다. 다행히 서점 창문 앞에 의자가 있어 기념사진은 찍을 수 있다.

파리를 대표하는 센강변 서점

처음부터 셰익스피어앤컴퍼니 가 유명했던 건 아니다. 작가에게 목소리를 낼 기회와 숙소를 제공하며 점차 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흥미롭게도 바다 건너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서점 시티라이트(City Lights) 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두 서점 모두 체제에 순응하지 않은 작가들의 집결지였다는 점에서 ‘자매 서점’과도 같다.

미국인 실비아 비치는 1919년 파리의 뒤퓌트랑 거리에서 시작한 영문학 서점 셰익스피어앤컴퍼니를 1921년 오데옹 거리로 옮기며 전성기를 맞는다. 1920년대 어니스트 헤밍웨이, 토머스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작가가 파리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셰익스피어앤컴퍼니 를 자주 찾았다. 그중에는 제임스 조이스도 있었다. 그가 쓴 <율리시스>는 오늘날 20세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지만 당시만 해도 너무 길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출판을 거절당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차린 호가스출판사도 출간을 포기했을 정도다. 비치는 겁도 없이 이 작품을 직접 출판했다. 셰익스피어앤컴퍼니 가 불멸의 명성을 얻은 이유다.

미국인 조지 휘트먼은 1951년 파리 노트르담성당 근처에 있는 16세기 수도원 건물에 ‘르미스트랄’이라는 서점을 열었다.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며 비치는 서점 문을 닫았고 1964년 세상을 떠났다. 비치가 죽자 휘트먼은 이를 기리기 위해 서점 이름을 ‘ 셰익스피어앤컴퍼니’ 로 바꾼다. 오늘날 우리가 파리에서 만나는 서점이다.

휘트먼의 서점은 숙박할 수 있는 ‘텀블위드’(Tumbleweeds)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휘트먼은 1970년부터 서점의 책장 사이에 침대 13개를 숨겨놓고 작가를 공짜로 머물게 했다. 휘트먼이 사회주의자라서 가능한 일이었을 테다. 프랑스 경찰은 서점에서 잠자는 사람을 의심하며 숙박계를 요구했다 . 휘트먼은 숙박계를 쓰는 대신 서점에서 하룻밤을 묵으려는 이들에게 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 인생에 대해 글을 쓰라고 했다. 이렇게 쌓인 글 3만 편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것을 2016 년 3대 사장인 실비아 휘트먼이 <내 마음의 넝마와 뼈의 책방>(The Rag and Bone Shop of the Heart)이라는 회고록으로 출간했다.

50여 년 동안 휘트먼이 서점을 운영한 방식은 좀 괴팍했다. 서점에는 전화도 카드단말기도 없었다 . 심지어 돈을 책 사이에 끼워놔서 좀도둑도 들끓었다 . 휘트먼이 2011 년 세상을 뜬 뒤 딸인 실비아는 낡은 서가를 보수하고 책의 배치도 바꿨다 . 서점 옆에 동명의 카페도 열었다 . 파리문학상을 제정했고 문학축제도 열었다 . 팟캐스트 서비스도 하고 온라인으로 서적 판매도 한다 . 팬데믹 기간에 독자들에게 서점 운영이 어렵다는 사실을 호소하자 전세계에서 온라인 주문이 쇄도해 위기를 넘겼다 . 혹시나 파리 고서점에서 낭만적인 하룻밤을 꿈꾸는 독자가 있다면 먼저 서점 누리집을 확인하길 ! 지금은 텀블위드를 운영하지 않는다.

앨런 긴즈버그의 <울부짖음>을 펴낸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시티라이트’ 서점. 시티라이트 누리집

비트세대의 둥지, 시티라이트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서점 시티라이트는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와 여러 접점이 있다. 1953년 로런스 펄링게티는 대중문화잡지 <시티라이트>의 편집인인 피터 D. 마틴과 동업으로 서점 시티라이트를 시작했다. 펄링게티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고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부터 서점에 흥미가 많았다. 유학 시절 펄링게티는 르미스트랄에 드나들었다. 실비아 비치가 <율리시스>를 출간했다는 사실도 눈여겨봤다. 펄링게티는 책을 펴내는 서점을 기획했고, 자신의 시집 <지나간 세계에 대한 그림들>을 첫 책으로 출간했다.

1955년 10월 펄링게티는 식스갤러리에서 열린 앨런 긴즈버그의 시낭송회에 참석했다. 거기서 긴즈버그의 ‘울부짖음’(Howl)이라는 시를 듣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바로 긴즈버그에게 전보를 쳤다. “새로운 삶의 출발점에 선 당신을 환영합니다. 원고는 언제 넘길 건가요?” 1956년 긴즈버그의 <울부짖음과 다른 시들>(Howl and Other Poems)이 시티라이트에서 출간됐다. 비트세대의 시작이다. 비트세대는 1950년대 물질 만능주의를 반대하며 인간 정신을 회복을 주장한 낙천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로 히피 문화의 원조다.

긴즈버그의 시집은 1957년 6 월 1 일 , 경찰이 펄링게티 와 서점 지배인 시그 무라오를 음란서적 판매 혐의로 체포한 뒤 불티나게 팔렸다. 펄링게티 가 기소돼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긴즈버그는 미국을 떠나 있었다 . 파리에 도착한 긴즈버그는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의 주간 문학행사에 참여해 ‘울부짖음’을 낭독했고, 서점을 비공식적인 도서관으로 여기며 매일같이 드나들었다.

“서점은 세상의 길들이 만나는 곳”

한 시대의 아이콘이던 두 서점은 작가를 사랑했고, 작가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힘껏 응원했다. 또한 작가들이 써낸 불온한 책들과 정신의 안식처였다 . 조지 휘트먼의 말처럼 그때나 지금이나 “서점은 세상이라는 세로 길과 정신이라는 가로 길이 만나는 곳”이다 . 두 서점이 걸어온 길이자 앞으로의 서점이 걸어갈 길이다.

한미화 <동네책방 생존탐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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