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절단 나뿟어”…태풍 ‘카눈’에 둑 터졌던 군위 병수리 마을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말도 몬해. 이 마실에 뽀드(보트)가 막 돌아댕깄다카이. 절단 나뿟어."
조씨를 만난 대구 군위군 효령면 병수1리는 제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 남쪽을 종단한 지난 10일 마을 옆 남천 제방이 터지면서 동네 전체가 침수 피해를 보았다.
당시 군위군은 10일 오전 9시45분부터 태풍 관련 재난문자를 15차례 보내고, 효령면 중구·화계·불로리 3곳은 마을 이장을 동원해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말도 몬해. 이 마실에 뽀드(보트)가 막 돌아댕깄다카이. 절단 나뿟어.”
14일 오전 젖은 겨울 이불을 전동휠체어에 싣고 나오던 조수진(90)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조씨를 만난 대구 군위군 효령면 병수1리는 제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 남쪽을 종단한 지난 10일 마을 옆 남천 제방이 터지면서 동네 전체가 침수 피해를 보았다. 당시 효령면 일대에는 시간당 최고 32.4㎜의 많은 비가 내렸다. 소방당국은 마을에 고립된 주민들을 구하려고 소방보트를 동원해야 했다.
“이불이고, 소파고, 머고 다 젖었다. 염소 농장에 물이 들어차가 우리 염소들도 다 죽어삣다. 마카 다 새끼 뱄는 아들인데. 하이고.” 이번 태풍으로 군위군에서는 염소 46마리가 폐사했다.
다행히 물은 하루 만에 빠졌지만, 여름 해를 받아 익어가던 벼는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처참하게 쓰러져 있었다. 자두밭 역시 ‘뻘밭’으로 변했다. 군위에서만 주택 20채, 농작물 187㏊가 침수됐다.
“뻘이 어마어마해서 걷어낼 엄두가 안 나요. 우리 비닐하우스가 3m 넘는데 이게 다 물에 잠깄다니까. 자두나무고, 트랙터고 다 잠깄어. 일단은 햇빛에 말루코(말리고) 있는데, 못 쓸 끼라(거야). 수천만원 하는 트랙터를 또 빚내서 사야 하나, 우째야 하노.”
이석의(82)씨가 자두밭 앞에 심어 놓은 땅콩 줄기를 훑으며 하소연했다. 그는 “재난지역으로 정해지지 않아서 농기계는 정부 지원이 없다고 한다. 올해 농사는 이미 망쳤지만, 내년 농사가 더 막막하다”고 했다. 이날 저녁 윤석열 대통령은 태풍 ‘카눈’으로 피해를 입은 대구시 군위군과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우선 선포했다. 이날 마을 곳곳에선 주민들이 물에 젖은 가재도구를 씻어 말리느라 분주했다.
마을에선 지난 10일 낮 12시33분 마을 주민 ㄱ(67)씨가 차오르는 물을 피해 집에서 빠져나오다가 숨졌다. 하지만 행정당국은 김씨를 태풍으로 인한 재난사고로 집계하지 않았다. 군위군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수차례 재난문자를 보내고 마을 이장 등을 통해 대피하라고 안내했는데, 대피하지 않아 본인 과실이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당시 군위군은 10일 오전 9시45분부터 태풍 관련 재난문자를 15차례 보내고, 효령면 중구·화계·불로리 3곳은 마을 이장을 동원해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하지만 강제력을 동원한 긴급대피 행정명령은 없었다. 주민 이아무개(60)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아니고, 둑이 터져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다. 아무리 정부가 피해 규모를 줄이고 싶어도 그렇지 어떻게 재난사고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주민들은 2019년 시작된 ‘남천 하천재해예방사업’이 이번 범람과 관련이 있지 않은지 의심하고 있다. 주민 이숙자(70)씨는 “이 마을에 온 지 49년 됐는데, 아무리 비가 와도 둑 터지는 것은 처음 본다. 부실공사가 아니면 왜 터졌겠느냐”고 했다. 또 다른 40대 주민도 “둑 안에 성토를 해서 강의 3분의 1 정도가 밭으로 변했다. 2012년쯤부터 군에 민원을 넣었는데, 아무도 조처를 해주지 않았다. 결국 둑이 터지고 사람이 죽고서야 행정당국은 현장에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도 14일 성명을 내어 “남천은 원래 하천 영역이었던 땅을 개간해 사람이 이용하고 있다. 하천 폭이 좁아져 수해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정부, 한은서 100조원 빌려 썼다…지급 이자도 이미 역대급
- 아들학폭은 ‘사생활’, 부인 인사청탁은 ‘오래돼서’…이동관 답변 거부
- 어떤 채널 돌려도 땡윤 방송? KBS·MBC·EBS 이사 해임, 해임, 해임
- ‘현타’ - 눈떠보니 후진국 6
- 횡령·배임 기업인 줄사면…“윤, 공정·상식 강조하더니 정경유착”
- 세월호 사찰 책임자, ‘짜고 친 듯’ 상고 취하→형 확정→사면
- 문재인 정부 7년째? 잼버리 파행 지적에 대통령실 “후안무치”
- 제 친구들은 공공임대 청약 안 넣어요…들러리 된 1인가구
- 엄마 칼국수 반죽 꼬랑지 굽기…뭉클한 관찰력이 곧 당신이다
- 수영 국가대표 황선우, 선수촌 입촌하다 뺑소니 의심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