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배 뛴 물가’ 아르헨 좌파 정권, 대선 예비선거 3위 참패

부에노스아이레스/서유근 특파원 2023. 8. 14. 21:5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페론주의 몰락하나… 우파 ‘아르헨의 트럼프’가 1위
“아르헨티나를 몽땅 뜯어 고칠 겁니다” - 13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선거 캠프 무대에서 대선 예비 선거 1위를 차지한 극우 성향 ‘자유의 진보’ 소속 하비에르 밀레이(가운데) 대통령 후보와 빅토리아 비야루엘(오른쪽) 부통령 후보, 라미로 마라(왼쪽)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 후보가 어깨동무를 하며 기뻐하고 있다. 이날 예비 선거 결과가 오는 10월 대선 본선까지 이어지면 현재 집권 중인 좌파 연합 정권은 교체될 전망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 본선을 두 달 앞두고 진행된 예비선거(PASO)에서 제3 세력이던 극우 후보가 1위에 오르고, 집권 중인 좌파 페로니스트(대중영합주의자) 연합은 3위로 밀려나는 대(大)이변이 벌어졌다. 오랜 기간 아르헨티나를 지배한 좌파 포퓰리즘에 따른 지독한 경제난과 사회 문제에 대한 반감이 표출됐다는 분석이다.

13일 치러진 예비선거의 개표가 14일 오전 7시 현재(현지 시각) 97% 진행된 가운데 ‘자유의 진보’ 소속 단일 후보로 나선 하비에르 밀레이(53) 하원의원이 득표율 30%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중도 우파 성향의 제1 야권 ‘변화를 위해 함께’ 소속으로 나선 후보들이 합계 28%를 기록했다. 현 집권 세력이자 페로니스트인 ‘조국을 위한 연합’ 후보들이 도합 27%를 얻으며 3위에 그쳤다. 각종 여론조사와 올해 치러진 지방선거 결과들을 고려했을 때 좌우 양대 연합 사이의 각축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깬 예상 밖 결과다. 지난 수년 동안 좌파 포퓰리즘이 휩쓸어온 남미의 정치 지형도가 바뀔지 주목된다.

이번 예비선거는 오는 10월 22일 열릴 대선 본선에 진출할 각 정당의 최종 후보를 정하는 절차다. 대선 도전 의사가 있는 모든 후보가 출마해 1.5% 이상 득표하고 소속 정당 후보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아야 해당 정당의 최종 후보로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역대 대선 본선에서 예비선거의 결과가 뒤집어진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예비선거는 본선의 ‘전초전’으로 여겨진다.

이번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밀레이는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는 경제학자 출신이다. 반(反)페론주의를 내세운 우파 후보로 꼽힌다. 정치·경제 이념으로 자유주의를 표방한 그는 무분별한 복지 등 정부 재정 지출을 대폭 삭감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밀레이는 이날 예비선거의 윤곽이 드러나자 “우리는 국가를 침몰시키는 키르치네르주의(페로니즘에서 파생된 좌파 이념)와 기생적인 정치 계급의 헛소리를 종식시킬 것”이라며 “항상 실패해온 ‘똑같은 오래된 것’들로 아르헨티나를 바꿀 수는 없다”고 했다.

밀레이는 과격한 언행과 극단적인 공약 등으로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기존 좌우 양대 세력의 후보와 비교해 ‘극우’로 분류된다. 연간 100%가 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 해소를 위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을 폐지하고 미국 달러를 공식 통화로 채택하자는 ‘달러 통용 제도(dollarization)’ 도입 주장이 대표적인 ‘극단적 공약’이다. 사회 문제와 관련해서는 보다 유연한 총기 소지와 장기 매매 합법화를 지지하며, 낙태를 반대한다. 외교 측면에서는 “중국 같은 공산주의자들과 거래하지 않겠다”며 반중(反中) 노선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밀레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미국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13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선거 캠프 무대에서 대선 예비 선거 1위를 차지한 극우 성향 ‘자유의 진보’ 소속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두 팔을 펼쳐 들어 승리를 만끽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날 결과가 10월 본선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면 4년 만에 다시 반페로니스트가 집권하게 된다. 2015년 아르헨티나 역사상 처음으로 중도우파·시장경제 성향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반페로니즘 정책을 펼쳤으나, 과잉 복지와 보조금에 길들여진 국민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며 개혁에 실패했다. 그 결과 2019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4년 만에 다시 페로니스트가 정권을 되찾았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인기 유지를 위해 이전 정권보다 강력한 복지와 보조금을 살포하는 ‘퍼주기’ 정책을 펼쳤다. 중앙은행은 정부 방침에 순응해 ‘돈 찍기’로 재정 적자를 메웠다. 이에 아르헨티나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대비 116%까지 치솟았고 외환 보유액은 바닥을 드러냈다. 마약 밀매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아지면서 무분별하게 유통되기 시작했고 범죄율 상승 등 각종 사회 문제도 악화했다. 그 결과 이번 선거에서 페로니즘 정당 역사상 가장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고, 이례적으로 극우 후보에게 표가 몰렸다는 분석이다. 투표율은 1983년 민주화 이후 가장 낮은 69%를 기록하면서 정치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표출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아르헨티나 안팎에선 이번 선거 결과를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르헨티나 매체 라나시온은 “밀레이가 예비선거에서 아르헨티나 정치에 지진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아르헨티나의 극우 아웃사이더 후보가 예비 선거에서 충격을 선사했다”고 전했다.

이날 보수 우파 연합에서는 파트리시아 불리치 전 안전장관, 집권 좌파 페로니스트 연합에서는 세르히오 마사 경제장관이 각각 최종 후보로 선출됐다. 아르헨티나 민주화 이후 최초로 좌파 페로니스트 후보 없이 우파 후보들이 대통령직을 놓고 결선 투표에서 경쟁을 벌일 가능성도 생겼다. 아르헨티나 대선은 본선에서 1위 후보가 45% 이상을 받거나 40% 이상을 받은 1위 후보가 2위와 10%포인트 이상 격차를 벌릴 경우 그대로 당선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1·2위 후보가 결선 투표를 통해 최종 승부를 가린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