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예루살렘 총영사 임명 하루 만에…이스라엘 “불허”
미국 중재로 외교 정상화 진전 속 ‘팔 지위’ 놓고 신경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미국 중재로 외교 정상화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양국의 진정한 화해까진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특히 1948년 이스라엘이 국가를 수립한 이후 줄곧 갈등을 빚어온 팔레스타인 지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레츠 등 이스라엘 현지 매체에 따르면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교장관은 13일(현지시간) 텔아비브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우리는 예루살렘에 사우디 외교 공관 개설을 허용하지 않을 예정”이라며 “예루살렘에 물리적으로 상주하는 사우디 관리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날 사우디 당국이 나예프 알수다이리 요르단 주재 사우디 대사가 비상주 팔레스타인 대사와 예루살렘 총영사를 겸하도록 한 조처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첫 반응이다.
외신들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사우디가 예루살렘 총영사직을 신설하자 양국 관계 정상화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코헨 장관이 직접 나서 평가절하한 모양새가 됐다.
코헨 장관이 사우디 행보에 예민하게 반응한 배경엔 예루살렘을 둘러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예루살렘을 불법 점령한 후 유엔의 철수 명령에도 현재까지 동예루살렘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자신들의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슬람 맹주를 자임하는 사우디는 이런 팔레스타인 주장을 직간접적으로 지지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사우디는 중재자 미국에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조건으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을 위한 대대적인 양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가 팔레스타인 대사와 예루살렘 총영사 자리를 겸직하게 만들자 이스라엘이 코헨 장관을 앞세워 불쾌감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 대사관이 예루살렘에 설치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자지라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은 사우디의 발표 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내용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결정”이라고 환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년 전격적으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다는 담화를 발표한 바 있다. 대부분 국가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사우디의 이번 결정이 이스라엘에 건네는 일종의 경고라는 시각도 있다. 중동 외교 전문가인 압둘아지즈 알가샨은 뉴욕타임스(NYT)에 “어떤 뜻을 전달하는 사우디의 전형적인 방식”이라며 “(사우디가) 팔레스타인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는 이스라엘 인식에 대한 사우디의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NYT도 “사우디가 팔레스타인을 위한 더 나은 대우를 위해 얼마나 진지하게 행동하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결국 내년 대선을 앞두고 사우디와 이스라엘을 화해시켜 외교 치적으로 삼으려는 바이든 대통령 계획엔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은 사우디와 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지만 장애물은 여전히 남아 있다”며 “예루살렘 최종 지위에 대해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타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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