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창 밖 넓은 세상 보고 싶었나…탈출한 암사자 1시간 만에 사살

김현수 기자 2023. 8. 14.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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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의 한 목장에서 탈출해 산으로 도주한 암사자가 14일 풀숲에 앉아 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경북 고령 민간목장서 탈출
인근 야영장 70명 긴급대피
“포획했으면” 동정 여론 속
당국, 사자 수입 경위 조사

14일 오전 8시12분쯤 경북 고령군의 한 민간 목장 인근 계곡 풀숲. 20살로 추정되는 고령의 암사자 ‘사순이’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날 사순이가 우리를 탈출했다는 신고가 접수된 시간은 오전 7시24분쯤. 그로부터 20여분 뒤 엽사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좁은 우리를 떠나 한 시간여 세상 구경을 마친 사순이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포획에 나선 한 경찰관은 사순이가 더위를 피해 인근 계곡으로 간 듯하다고 했다. 사순이 우리는 햇볕을 피할 곳이 없었는데, 때마침 열린 문을 통해 시원한 그늘을 찾아간 것으로 추측된다. 사순이는 전날 목장 관리인이 사료를 준 후 실수로 잠그지 않은 우리 뒤쪽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 것으로 파악됐다.

경북 고령군 한 민간 목장에서 키우던 암사자가 우리를 탈출했다가 한 시간여 만에 사살됐다. 고령군과 성주군은 재난 문자를 통해 사자 탈출 소식을 알리는 등 마을에서는 크고 작은 소동이 빚어졌다. 특히 목장과 직선거리로 300m에 있는 야영장에서는 70여명이 마을회관으로 긴급대피했다. 이날 대구에서 왔다는 오세훈씨(42)는 “이른 아침이라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마을로 대피했다”며 “재난 문자가 울리길래 처음엔 불이 난 줄 알았다”고 말했다. 배우진군(12)도 “무섭기도 했지만 사자가 총에 맞고 죽었다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순이는 2008년 11월 경북 봉화군에서 고령군으로 옮겨 사육하겠다고 대구지방환경청에 신고된 개체다. 사자는 멸종위기 2급 동물로 야생동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식 통관 절차를 거쳐야 사육할 수 있다. 대구지방환경청은 사순이가 언제 어디서 수입됐는지, 이전 기록 등에 관해 확인하고 있다.

탈출 한 시간여 만에 사살된 것을 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좁은 우리에서 평생을 살았던 사순이에 대한 동정 여론도 일고 있다. 포획이 아닌 사살이 적절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사순이 관련 기사에는 ‘충분히 포획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 ‘마취총 두고 왜 사살하느냐’ ‘평생 갇혀 살다가 총 맞고 죽게 돼 불쌍하다’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비극’ 등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경찰은 소방과 고령군 관계자 등이 협의해 사살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탈출한 암사자가 나무 뒤쪽에 있어 마취총이 오발 날 가능성도 있었다”며 “마취총에 맞더라도 바로 쓰러지는 것도 아니어서 사자가 도주했을 경우 민가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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