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쉽지 않다. 일상이 팍팍하다.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스트레스를 해소해 줄 자극이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짧은 시간을 투자하고 큰 재미를 얻고 싶어 한다. 길이가 1분 남짓인 유튜브 숏츠가 인기를 끄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
재미만을 추구하고 영상 하나가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다음 영상을 재생하다 보니 방금 본 것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그래서 기자는 두렵다. 스크롤을 살짝 내려 봐도 사진은 별로 없고 검은색 글씨가 가득한 이 글을 보고 당신이 뒤로 가기를 눌러버릴까 봐서다. 이렇다 할 사진도 없이 앞으로 4245자의 글을 읽어야 한다면 다들 도망가지 않을까 싶은 걱정도 앞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엄청난 재미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당한 재미에 의미를 더한 서울의 이색 명소를 다녀와 꼭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당신은 그곳에서의 경험을 곱씹고 또 곱씹게 될테고, 1년 뒤에 엽서를 보며 다시 한 번 당신이 했던 경험을 음미하게 될 것이다.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의 소중함과 나 자신 그리고 주변 사람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서울의 이색 명소 2곳을 소개한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어둠속의 대화 북촌점
인턴기자 생활 시작한 지 8개월만에 최대 난제를 만났다. 취재를 갔는데 보고 들은 내용을 거의 쓸 수가 없다. 심지어 건물 외관 사진 말고는 별다른 사진도 없다.
특출난 글재주도 없는데 무슨 수로 사진도 없고 전시 내용도 없는 글을 읽게 한단 말인가. 글 쓰는 일을 하는 기자도 글자가 너무 많아 보이면 창을 닫아 버릴 때가 있는데 사람들이 과연 끝까지 읽어줄지 심히 염려스럽다.
1시간 40분 동안 어둠 속에서 뜻깊은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아무리 외쳐 봐도 그냥 광고 정도로 치부하진 않을까, 입장권이 3만3000원으로 그리 저렴하지도 않은데 무슨 내용인지는 말도 안 해주면서 푯값이 절대 아깝지 않으니 가라고만 하면 과연 믿어줄까 걱정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일어났을 때 갑자기 현기증이 나면서 앞에 하얘지는 경험을 한 번씩은 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 상태가 몇 초 정도가 아니라 계속된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지속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 이 기사를 눈으로 읽고 있다면 당신에 대해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다. 당신은 앞이 보인다. 보는 데 별문제가 없는 삶을 살아왔다면 어둠속의 대화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 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어둠속의 대화’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는 이색 전시다. 100분 동안 안내자인 로드마스터를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어둠속의 대화’는 1988년 독일에서 처음 시작해 지금은 전 세계 32개국에 전시장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0년에 상설 전시장을 설치한 이후 65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어둠속의 대화’를 경험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컴컴한 어둠만이 계속되는 공간에서 로드마스터의 목소리에 의지해 한 손엔 지팡이를, 다른 한 손은 벽을 짚고 걸어가면서 이동한다.
어둠 속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싶지만 1시간 40분 동안 굉장히 많은 것을 체험한다. 전시에 참여하며 내가 눈으로 본 건 어둠뿐이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어둠이 가릴 수 없는 무언가를 보았다. 내가 만지고 밟는 모든 것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뼈대를 세우고 색을 입혔다.
전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그곳이 검은색이 아니라 총천연색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이지만 아무것도 안 보이기에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형태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이곳을 500명이 방문하면 500명이 기억하는 이미지가 다 다르다. 어둠속의 대화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하루에도 수백 번씩 그 모습이 바뀐다.
체험을 마치면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정말 아는 것인지 묻게 된다.
보인다는 걸 가정하고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고 일상의 소중함을 깊이 느끼게 된다. 체험 후에 경험한 걸 되돌아보는 시간이 꼭 필요한 전시다.
10번 넘게, 100번 넘게 오는 관람객도 있을 만큼 분명 재미도 갖춘 전시다. 하지만 재미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 전시라고 말하고 싶다.
‘어둠=얻음’이라는 후기가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다. 100분 동안 당신은 어둠 너머로 무엇을 보게 될까. 정말 궁금하다.
전시에 대한 정보는 이 기사 하나로 충분하다. 최대한 백지상태로 가자. 어둠속의 대화만큼은 어떤 전시인지 모르는 게 힘이다. 보이지 않아 더 조심하게 되니 안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엽서 한 장으로 미래를…널담은공간 경복궁점
‘어둠속의 대화’ 관람을 마치면 너나 할 것 없이 여러 생각에 빠지게 된다. 이럴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잠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널담은공간에서 느낀 점을 곱씹어 보며 미래의 나에게 또는 함께한 일행에게 또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보자. 모든 것이 디지털로 변하는 이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널담은공간은 엽서를 쓰면 그다음 해에 발송해 주는 이색 카페다. 만약 엽서를 쓰는 연도가 2023년이라면 2024년 중 언제 받을지 선택할 수 있다. 편지 발송함이 365개라 받고 싶은 날짜에 엽서를 넣으면 된다. 어쩌면 세상서 가장 느린 엽서일 수 있겠다 싶다.
소중한 사람에 대한 마음을 담는 공간이라고 해서 이름도 널담은공간이다.
말로는 못 해도 글로는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기에, 또 편지를 지금이 아니라 내년에 받는다면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 엽서 카페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널담은공간은 경복궁 옆에 위치해 창 너머의 전경이 정말 아름답다. 통창이라 밖을 보며 엽서를 쓰다 보면 그 자체로 힐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