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우경화’ 아베 정권 거치며 일본인들 식민지배 반성의식 약화”

박용하 기자 2023. 8. 14.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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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민단체 ‘강제동원 해결 공동행동’ 야노 사무국장
‘제3자 변제안’ 발표 이후
일 정부 후속조치 없었지만
요구 않는 한국 정부도 문제
인권침해 대응 원칙 무시해
역사적 공통 인식 구축 없인
양국 우호 깊어지는 데 한계

“아베 신조 전 총리와 같은 정치인이 일본에서 8년 가까이 집권했으니 국민 의식에 영향을 주지 않을 리 없죠. 여기에 역사교육까지 미흡해졌으니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성이 약해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 해결과 과거 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의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사진)은 78주년 광복절을 앞둔 지난 13일 경향신문과 나눈 e메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아베 전 총리 때부터 이어진 우경화 물결이 과거사에 대한 일본인 의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30여년간 모국을 향해 ‘과거사 반성’을 촉구해온 그의 분석이다.

1990년대부터 강제동원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한국인 피해자들을 지원해온 그는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제3자 변제안’이 국제사회의 인권침해 대응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제쳐두고 안보·경제 협력에 따른 이득만을 바라보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공통 인식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양국 국민들의 우호가 깊어지는 데 한계가 있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8년이 지났다.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일본 국민은 어떤 인식을 갖나.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를 밝힌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담화 이후 일본 역대 내각은 거듭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를 표명한 바 있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는 2015년 종전 70년 담화에서 식민지배에 대해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의 역사수정주의가 단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정치인이 8년 가까이 집권했으니 국민들의 의식에 영향을 주지 않을 리 없다. 여기에 역사교육도 미흡해지면서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반성 의식이 약해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 최근 도쿄도 네리마구의회 공개회의 중 과거의 식민지배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이 나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이 받아들인 ‘포츠담 선언’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도 모르고, 식민주의와 노예제도를 전쟁범죄로 규정한 ‘더반 선언’이나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 등에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 어리석은 정치인들이 일본에는 존재한다. 그런 인물이 지방의회 의원으로 선출되고 있는 사실을 가볍게 볼 수 없다. 다만 이런 인물을 의원으로 오래 활동시킬 만큼 일본 유권자들이 어리석지는 않다고 믿는다.”

-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9%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8월15일에 식민지배 가해와 반성을 언급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조사 결과는 ‘아베의 시대가 과연 좋았을까’라고 생각하는 일본 국민이 적잖게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라야마 담화 이후 이어져온 과거에 대한 사죄 흐름을 깬 것이 아베였다. 이제 아베의 시대는 끝났다. 기시다 총리가 ‘탈아베’를 목표로 한다면, 전임자와 달리 과거에 대한 반성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많은 국민들이 생각하지 않을까.”

-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5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사에 관한 사과 대신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프다’고만 말했다.

“한국 정부가 3월에 내놓은 강제동원 피해자 해법(제3자 변제안)에 대해 일본이 ‘성의 있는 호응’을 하지 못해 기시다 총리 스스로도 다소 실망스러웠던 것이 아닐까.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성의 없는 성명을 내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발언을 한 것이 아닐까 한다. 기시다 총리가 이렇게 말한 것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발언을 다음 행보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진지한 후속조치를 했다는 흔적은 없다. 다만 한국 정부 측도 일본 정부에 후속 조치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 기시다 정권을 옹호할 의사는 전혀 없지만, 이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 제3자 변제안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정부가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서두른다는 지적도 있다.

“제3자 변제안은 일본 기업들의 자산 현금화 절차가 진행되면 한·일관계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 생각한 이들이 이를 피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라 본다. 나도 한·일관계 개선은 환영하지만, 그렇다고 강제동원과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를 입은 이들을 제쳐두면 안 된다고 본다. 이번 대책은 국제사회가 규정한 중대한 인권침해 대응의 기본원칙(진실과 정의, 배상, 재발 방지를 요구할 권리 보장 등)을 반영하지 않았다. 양국의 논의가 인권 회복보다 안보와 경제 협력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어 유감이다. 이래선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인권과 존엄성을 회복하기 힘들다.”

- 현시점에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해 해나가야 할 일은.

“현재 제3자 변제안을 납득하지 않는 피해자들이 있다.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은 강제동원 기업들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 그 증표로 위자료를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정부가 인정했던 것이어서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일본 정부 차원에선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록을 조사하고 피해자 증언을 청취한 뒤 정부 차원의 담화(고노 담화)를 낸 반면, 비슷하게 국가 책임하에 진행된 전시 노무동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고 잘못이라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문제 해결을 막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이라 생각한다. 현재 일본에는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정부 스스로가 식민주의를 청산하는 입장에 서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 청산과 양국 관계 개선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두고 고심해왔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하다고 보는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 역사, 그 실태와 실상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1965년 국교정상화 시점에서는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는지에 대해 양측의 의견이 엇갈린 채 실질적인 논의가 중단됐다. 그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양국은 현재 인적 교류나 문화적 교류가 넓어지고 경제적 유대도 강해졌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공통된 인식 없이 양국 국민들의 우호가 진정으로 깊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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