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당신은 얼마나 오래동안 걸을 수 있을까요?[내 건강의 만사혈통]
*글·조수범 이대대동맥혈관병원 말초혈관센터장(영상의학과 교수)
“다리가 아파서 동네 한바퀴를 다 못 돌고 중간에 쉬었다 가야해요.” 다리가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환자들이 외래에서 하나같이 호소하는 말이다. 이처럼 걸을 때 종아리나 허벅지, 또는 엉덩이 부분이 조이듯이 아파지고, 제자리에 멈추어 쉬면 증상이 가라앉는 증상을 의학적으로 간헐적 파행(intermittent claudication)이라고 한다. 이는 다리 근육이 필요한 만큼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간헐적 파행이 생기는 이유는 다리로 혈액을 공급하는 말초동맥의 죽상동맥경화증 때문인데, 동맥내벽에 콜레스테롤 등의 노폐물이 쌓여 내강이 좁아지고 혈관벽이 딱딱해지는 것을 말한다. 심장동맥, 뇌동맥과 함께 말초동맥에 생기는 동맥협착증은 매우 위중한 질환이지만, 말초동맥의 경우 심장, 뇌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당장 생사를 결정짓지는 않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환자들이 많다.
하지만 이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점점 다리를 사용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어도 다리가 저리거나 발이 타는 듯이 아플 수 있고(중증하지허혈), 발과 다리가 항상 차갑고 피부에 궤양이 생길 수도 있으며, 더 심해지면 발이 완전히 썩게 되어 다리의 절단이 필요하게 될 수도 있다. 특히 당뇨로 인하여 생긴 당뇨발의 경우, 조직손상이 감염 및 괴사로 진행될 수 있고 이는 절단술이 불가피하다.
심평원에 따르면 이러한 말초동맥협착증은 현재 국내에 20만명이 넘는 환자가 있을 정도로 매우 흔한 질환이고, 노령화로 인해 매년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흡연과 당뇨는 말초동맥협착증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고지혈증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 발생빈도는 더욱 증가한다. 이외에도 고혈압, 심혈관 질환의 가족력, 운동부족이나 과체중의 경우도 위험인자로 보고되고 있다.
말초동맥협착증을 진단하는 방법으로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외래에서 쉽게 시행할 수 있는 검사로는 발목동맥의 혈압을 측정하여 팔동맥 혈압과 비교하는 방법이 있다(ankle-brachial index, ABI). 발목동맥 혈압이 팔동맥 혈압보다 낮으면 다리로 가는 혈관에 좁아진 부분이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정밀검사 여부를 결정한다.
정밀검사로는 우선 조영제라는 약물을 정맥주사로 투여한 후 CT를 촬영하여 혈관의 상태를 확인하는 CT 혈관조영술이 있다. 이 검사는 다리동맥을 3차원 영상으로도 자세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좁아지거나 막힌 부위 및 정도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만약 CT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MRI을 이용하여 MRI 혈관조영술을 시행하거나 혈관 초음파 검사를 시행하게 된다. 혈관초음파는 조영제를 사용하지 않고 혈관의 상태를 확인하기 때문에 특히 신장질환을 가진 환자에게 장점이 있지만, 시행자에 따라 주관적인 의견이 있을 수 있으므로 반드시 경험이 많은 전문의가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다리동맥에 카테터라는 가는 관을 삽입하고 직접 검사하고자 하는 혈관내에 조영제를 투여하여 혈관의 상태를 보는 혈관조영술이 있다. 이 검사는 환자의 혈관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검사이기는 하지만, 가는 관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시술을 이어서 시행하는 경우에 주로 사용된다.
증상의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먼저 생활습관의 변화와 약으로 치료해 볼 수 있다. 병의 진행을 막기 위한 생활습관으로는 저지방 식이, 정기적 운동, 금연, 다리와 발의 청결유지가 필요한데 그 중에서도 특히 금연이 가장 중요하다. 병의 진행을 막고 증상을 개선시키기 위한 약으로는 혈중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 혈압조절제, 혈관확장제 등이 있다.
하지만 약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시술이나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혈관의 상태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최근에는 수술을 하기 전에 경피적 혈관성형술 (Percutaneous transluminal angioplasty, PTA)이라고 하는 시술을 먼저 고려해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여러 검사를 통해 혈관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좁아진 혈관 내로 풍선을 삽입하여 이를 넓혀주는 풍선확장술이나. 혈관의 뼈대 역할을 할 수 있는 특수금속망(스텐트)을 좁아지거나 막힌 혈관에 삽입하여 혈류를 다시 흐르게 하는 스텐트 삽입술을 시도해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시술만으로 치료가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수술적 치료를 시행해야 할 수도 있다.
박효순 기자 anyto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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