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없고 '입소문'만…하와이 주민 두 번 울린 늦장 대응

2023. 8. 14.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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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외래종 목초지 방치가 화재 키워"…주민들 "주민 죽은 물에서 수영" 관광객 무심함 토로하기도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100년 만의 최악의 산불로 최소 96명이 목숨을 잃은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에서 화재 경보 미작동이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재민에 생존을 위한 기본 정보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며 정부의 사후 대응마저 미흡하다는 비난이 속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3일(현지시각) 산불 피해를 입은 마우이 주민들이 정부가 물과 통신, 지원 물품 공급 상황 등 생존을 위한 급박한 정보조차 제대로 알리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극심한 피해를 입은 서부 주민들은 매체에 상황에 대해 정부로부터 직접 들은 바가 거의 없으며 어떤 형태의 공식 지원이 제공되는지도 몰라 '입소문'에 의지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전했다.

구호 물품을 실어 나르던 주민 코드 쿠니버티는 매체에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며 "우리는 그저 '코코넛 통신'(입소문을 뜻하는 현지 용어)을 전달하고 있을 뿐"이라고 성토했다. 11일 밤 서부 카팔루아 공항 인근 언덕에서 휴대폰 연결을 시도하던 주민 조시 매슬런은 "통신이 전혀 안 된다"며 "주 공무원들은 어디 있나? 물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방금 알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의 부재를 채우고 있는 것은 민간 자원봉사자들과 섬 주민들이라고 매체는 보도했다. 화재 뒤 전기와 인터넷이 끊기고 잘 곳을 잃은 이재민들은 실종된 친척을 찾거나 쉼터로 이동하기 위해, 또 구호 물자에 접근하기 위해 정부가 아닌 교회 및 지역 단체, 자원봉사자에 의존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재민들에게 가정에서 조리한 음식, 쌀 요리 및 스팸 등을 전달하고 큰 타격을 입은 서부 라하이나 지역 나필리 공원에선 주민들이 임시 배급소까지 차려 통조림, 물, 기저귀, 기타 생필품을 나눠줬다.

해양보호단체인 태평양고래재단에서 운영하는 오션스피릿호를 통해 계속해서 식량, 물, 연료, 의료 등 구호 물품을 실어 나르고 있는 에밀리 존스턴은 영국 BBC 방송에 "왜 오아후에서 아무런 도움도 보내지 않는지 궁금하다. 진주만은 비행기로 20분 거리에 있다"며 "왜 섬에 한정된 경찰 자원만 남아 있으며 이들에 대한 지원은 어디 있나? 왜 우리가 헬리콥터가 아닌 배로 물자를 실어 나르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피해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당국은 대응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매체는 당국자들이 화재가 외딴 곳에서 발생한 데다 규모가 너무 커 대응이 더 어려운 상황이며 더 많은 지원이 있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존 펠르티에 마우이 경찰서장은 아직 피해 지역의 3%밖에 수색을 마치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정확한 실종자 수 추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향후 수색이 진행되면 더 많은 주검이 발견될 것으로 봤다. 발견된 사망자 중 신원이 밝혀진 이들은 2명에 불과하다. 펠르티에 서장은 주민들에게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검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산불 확산 때 재해 경보가 울리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며 하와이주 법무 장관이 관련해 조사에 들어갔다고 미 CNN 방송이 보도했다. BBC는 인터뷰한 20명이 넘는 서부 라후이나 주민들 중 경보음을 듣거나 대피 공지를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며 당국자들이 경보가 울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마우이에는 쓰나미 등 자연재해 대비를 위한 80개의 옥외 경보기가 설치돼 있다.

하와이 당국은 산불이 코로나19 대유행 뒤 겨우 기지개를 켠 관광업에 찬물을 뿌릴까 걱정하고 있다. CNN은 하와이 당국이 산불 영향을 받지 않은 섬 동부 등의 관광이 중단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방송은 코로나 유행 기간 하와이의 가장 큰 경제 동력인 관광이 몇 달 간 중단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당국자들이 관광객들이 다시 돌아서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산불로 라하이나에서만 2200채의 건물이 훼손됐고 그 중 86%가 주거용 건물인 상황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이재민을 수용할 공간과 관광객의 숙소 수요가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를 보면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는 이재민을 위한 500개의 호텔방을 확보했고 숙박 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앤비 시설 일부에도 보조금을 지급해 이재민의 장기 체류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더해 가족과 이웃을 잃은 주민들이 일부 관광객들의 무심함에 마음을 다치고 있다고 BBC가 전했다. 마우이의 한 주민은 BBC에 "3일 전에 우리 주민들이 (산불을 피하려)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바로 다음날 관광객들이 같은 물속에서 수영했다"며 "주민들은 수영, 스노클링, 서핑을 하지 않고 있다. 누구도 비극의 한가운데서 재미를 찾지 않는다"고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지금 하와이는 둘로 나뉘어 있다. 주민들이 살아가는 하와이와 그들(관광객들이)이 방문하는 하와이"라고 덧붙였다.

열대 기후인 하와이가 산불에 취약해진 배경엔 지구 온난화가 자리한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불이 무섭게 번진 데는 불이 잘 붙는 외래 식물로 뒤덮인 들판을 방치한 탓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하와이의 주력 산업이 사탕수수 및 파인애플 농업에서 관광업으로 바뀌며 1990년대부터 농장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방치된 경작지에 아프리카에서 가축 사료로 도입된 목초만 무성히 자라며 주기적으로 들불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불에 잘 타고 가뭄에도 강한 이 풀들은 불이 나 황폐해진 땅에서 다른 식물들을 밀어내며 더 빠르게 자라 이제 하와이의 4분의 1가량을 뒤덮고 있다. 하와이대 화재 연구원인 클레이 트라우어니히트는 <워싱턴포스트>에 기후 변화는 전지구적인 문제지만 목초는 지역 문제라며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13일(현지시각) 산불이 휩쓴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 라하이나에 '관광객 출입 금지'라는 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이날 외신은 이재민들이 피서를 즐기는 일부 관광객들을 보며 참담함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AP=연합뉴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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