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당신들의 연금개혁, 당신들의 연금정치
결국 문제는 태도이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 한 발짝의 진전이라도 해내고자 할 때 우리는 대화를 통해 동의의 기반을 넓히고자 한다. 주도권을 가진 다수도 다른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을 포용하고자 한다. 그런데 포용이라…. 말이 아름답지, 이건 사실 서로를 참아내는 일이다. 힘의 불균형이 시소처럼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길목마다 다수는 힘의 논리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유혹을 참아내고, 소수는 치사함을 참는다. 힘을 갖지 못한 이들은 잠깐씩 보이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좁은 길을 찾아보려 애쓴다. 이건 길목마다 좌절이 출몰하는, 수명을 갉아먹는 일이기도 하다.
첫 번째 관전 포인트. 국민연금 개혁 논의 과정에서 다수와 소수는 끝까지 인내심을 유지했을까? 연금개혁에 관한 다양한 목소리는 국민에게 균형있게 전달될까? 만일 균형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면 누가 먼저 인내심을 잃었을까? 이제 1년 가까이 진행된 여러 정부위원회의 결과를 알리는 공청회, 정부의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 제출이 차례로 이루어질 테니 결과를 보면 알 일이다.
국민연금 논쟁 구도는 재정론자와 보장론자로 대비된다. 우선 기금소진 등 미래 재정문제가 예견되니 보험료율 인상을 비롯한 재정확충 위주로 연금개혁을 하자는 재정론자가 있다. 이들은 낮은 국민연금을 보충하기 위한 퇴직연금과 같은 사연금 시장의 역할을 강조한다. 다른 한편 고령화로 커지는 빈곤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인상이 필요하며, 더 충분한 노후보장과 장기 재정안정이 함께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보장성 강화론자가 있다. 국민연금의 본질은 적정보장 기능이며, 재분배 없는 사연금 시장은 국민 다수에게 주요 노후보장 수단이 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보장론자는 기존의 재정방안에 더해 협소하기 짝이 없는, 임금 등 노동소득 일부에 국한된 국민연금 보험료 부과기반을 고소득 부분, 자산 등으로 점차 넓혀가자고 말한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의 연금위원회에선 누가 다수였을까? 이 역시 제시될 내용과 과정을 보면 알 일이다.
국민연금 개혁에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과 함께 폭넓은 동의를 형성하며 개혁 과정을 밟아나가는 것이다. 위원회는 동의의 재료와 근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래서 위원회에서 균형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 관전 포인트는 위원회 이후 정부와 언론이 연금개혁 문제를 전달하는 태도이다. 우리 사회가 빠른 고령화 국면을 헤쳐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몇년간 노인빈곤율이 떨어졌다고 하나 빈곤한 노인은 늘었다. 빈곤율 하락 속도보다 노인 수 증가 속도가 더 빠르니 당연하다. 그러니 국민연금이 제 역할을 하게 만드는 일은 미룰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급속하게 증가할 보장 비용을 어떻게 고르게 책임지도록 할지 해법을 찾는 것은 커다란 지혜와 결단을 필요로 한다. 이건 논쟁에서 어떤 입장에 서있든 함께 대답해야 할 질문이다.
이런 와중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세대 간 분할을 조장하는 것, 제도의 지속 불가능성을 가정하는 것은 누구의 동의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는 공적연금에 관한 사실과도 다르다. 함께 배에 타 노를 젓자고 말한다면 배가 침몰할 것이라 외치는 대신 배의 가치를 높이고 내구성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에 국가의 역할이 있다.
연금 문제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폭넓은 협력을 구하는 과정 대신 힘에 기초한 효율성만 추구한다면 연금정치에서 무엇이 가능할까? 누구도 설득할 수 없는 ‘당신들의 연금정치’만 남을 것이다. 연금개혁에서 다양한 입장이 고르게 논의되는 열린 협의의 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래서 연금제도가 모두의 것으로 자리잡지 못한다면 연금정치에서 정부와 국민은 모두 패자가 될 수 있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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