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나무에 담긴 민족해방의 염원
일제강점기의 시인 심훈(1901~1936)은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그날이 오면’ 중에서)라며 민족 해방의 그날을 간절히 염원했다. 그는 조국 광복을 희구하는 시를 모아 시집 <그날이 오면>을 내려 했으나 일제의 검열에 걸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충남 당진군 부곡리 농촌마을로 찾아들게 된 계기였다. 1932년의 일이다.
민족의 희망이 되는 글을 쓰기로 작정하고 그는 집을 짓고 ‘밭을 갈면서 글을 쓰는 집’이라는 뜻으로 ‘필경사(筆耕舍)’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그는 창문 앞에 나무를 심었다. 민족 해방을 향한 희망과 기원이 하늘에까지 닿을 수 있도록 나무 향기가 하늘 높이 오르는 특징이 도드라지는 향나무를 골라 심었다.
필경사에 머무르며 심훈은 농촌운동에 투신했다가 영양실조와 과로로 26세의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최용신 이야기를 토대로 소설을 썼다. 애면글면 소설을 완성한 그는 소설의 제목을 그가 필경사 마당에 심은 향나무, 즉 ‘상록수’로 붙였다.
필경사 향나무는 백 년을 채 살지 않았지만 나무 뒤쪽으로 거느린 대나무 숲과 앞쪽에 새로 심은 측백나무에 비해 유난스레 기운차다. 심훈의 눈에 향나무가 먼저 들어왔던 것도 그런 옹골찬 생김새 때문이었으리라.
민족 향의 상징으로 살아남은 심훈의 필경사 향나무는 그를 심은 사람의 뜻에 따라 푸르게 잘 자랐다. 나무 높이는 고작해야 10m도 안 되지만 여느 늙고 커다란 향나무 못지않게 헌걸차다. 조국의 해방과 번영을 기원한 심훈의 염원을 알기라도 하는 듯하다. 가느다란 잎새 사이사이에는 조국 해방을 향한 식민지 지식인의 절치부심이 새겨져 있다. 치욕의 세월을 견뎌 이토록 푸르게 가지를 뻗고 잎을 돋웠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이미 떠나고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나무 잎새에 배어 있는 나무를 심은 사람의 뜻을 더 절절하게 새겨야 할 즈음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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