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특급 포수이자 강타자였던 요기 베라(1925~2015)가 선수 생활 뒤 감독을 맡은 뉴욕 메츠는 1973년 한때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최하위까지 순위가 곤두박질쳤다. 당시 일부 미국 언론은 뉴욕 메츠를 두고 이번 시즌에선 더 기대할 게 없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에 대해 베라가 내뱉었다는 이 ‘포기를 포기한 언어’는 뉴욕 메츠에 극적인 변화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뉴욕 메츠는 기적처럼 1973년 동부지구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준우승을 한다. 당시 미국의 수많은 야구 팬 가운데 이런 반전을 예견한 이는 드물었을 것이다.
지금 포기의 의미를 되짚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일본 정부가 이르면 이달 말, 많은 한국 국민의 반대에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 오염수 방류를 시작할 가능성이 커진 것과 연관된다.
현재 후쿠시마 원전 주변에는 133만t의 오염수가 탱크 1000여개에 나눠 저장돼 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방류하기 위한 시설 공사를 지난 6월 마쳤다. 지난달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최종 보고서를 받아들었다. 방류를 위한 기술적인 준비와 외교적인 명분을 모두 손에 넣었다. 이제 남은 건 일본 정부의 ‘결단’뿐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 방침을 한국 국민이 선뜻 받아들일 이유는 찾기 힘들다. 한국 바다로 방사성 물질이 흘러든다면 아무리 방사능 수치가 미약한들 아예 안 버리는 것보다는 못한 결과가 나온다.
특히 저농도 방사성 물질에 수십년 장기 노출됐을 때 인간과 바다 생태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과학계에서 뚜렷하게 연구된 적이 없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오염수 방류가 코앞에 닥친 지금, 한국 국민이 해야 할 일은 뭘까. 우리 주변에서 앞으로 일어날 ‘낯선 일’에 주목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낯선 일이란 게 뭔지 가늠할 수 있는 사례는 이미 몇 가지 있다. 최근 한국 정부는 오염수 방류에 대응하겠다면서 수산물 방사능 검사 결과를 언론에 매일 브리핑하고 있다.
한 여당 정치인은 바다가 얼마나 안전한지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수산시장의 수조에 담긴 물을 퍼서 자신의 입에 넣었다. 다른 한쪽에선 보통의 부모들이 아이들 걱정에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구입해 쟁여둘 생각을 한다. 오염수에 대한 반응의 방향은 각자 다르지만, 모두 예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낯선 일이다. ‘일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낯선 일은 오염수가 방류된 뒤 더 많아지고 다양해질 가능성이 크다. 오염수 방류로 나타나는 낯선 일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오염수 방류 역시 더 이상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돼 우리 곁에 자리 잡고 말 것이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30년간 오염수를 지속적으로 방류할 계획이다. 원전 폐로가 늦어진다면 그 기간은 더 늘어날 것이 확실시 된다. 원전 오염수 방류 시작을 막지 못했다면 다음 목표는 방류 중단이 돼야 한다.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정호 산업부 차장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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