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겹의 돌담으로 둘러싸인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힐링 공간’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강원도 고성에 2015년 건립한 시립미술관
바위 지역사투리 ‘바우’·‘뮤지엄’ 합성어
동네 이름 ‘원암리’… 바위가 으뜸인 마을
대관령 터널 공사장 쇄석 모아 벽 만들어
근현대조각관·김명숙조형관·별관 등 건물
설악산 울산바위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
규모가 큰 산은 흙산이 아니라 바위산이다. 그래서 ‘큰 산’을 뜻하는 ‘악(岳, 嶽)’ 자가 이름에 들어간 산은 면적도 넓지만 바위 때문에 험준하다. 등산객들이 ‘악’이라는 글자가 이름에 들어간 산을 오르면 ‘악’ 소리가 난다고 괜히 말하는 게 아니다. 바위들이 많다 보니 이런 산에는 산을 대표하는 기암이 하나씩 있다. 치악산에는 삼형제바위, 월악산에는 아들바위, 관악산에는 연주대 옆에 불꽃바위가 바로 그런 예다. 그리고 누가 선정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의 5대 명산’ 중 하나인 설악산에는 울산바위가 단연 최고의 스타다.
운이 좋지 않게도 바우지움미술관에 갔을 때 안개에 가려 울산바위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바우지움미술관이 지닌 그 자체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우지움미술관의 첫 번째 매력은 끊어진 듯 이어져 있는 단속적(斷續的)인 공간구성이다. 미술관은 크게 근현대조각관-김명숙조형관-별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건물은 동쪽-서쪽-동쪽으로 각각 엇갈려 배치돼 있다. 그래서 방문자들이 세 건물과 각각의 야외공간으로 가려면 ‘ㄹ’ 자 형태로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런데 각 공간에서는 그다음 공간으로 연결되는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없다. 마치 미로처럼 입구 뒤에 벽을 놓고 직각으로 동선을 꺾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매력은 조각과 건축이 상호보완을 이루는 장면이다. 바우지움미술관은 2015년 현대 조각의 대중화와 발전을 위해 치과의사 안정모 박사와 조각가 김명숙 관장 부부가 건립한 사립미술관이다. 당연히 미술관에는 조각 작품만 전시돼 있다. 조각은 회화와 달리 벽에 종속되지 않고 전시될 수 있다. 그래서 조각을 위한 미술관에서 벽은 회화를 위한 미술관과 달리 흰색일 필요도 없고 심지어 막혀 있지 않아도 된다.
세 번째 매력은 벽의 역할이다. 바우지움미술관에서 벽의 가장 큰 역할은 건물이 들어선 땅과 미술관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특히, 입구로 연결되는 통로 양쪽의 키보다 높은 벽은 마치 방금 땅에서 융기한 듯하다. 통로 끝에 놓인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조각 작품은 쇄석을 밟을 때 나는 자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입구까지 들어온 방문객에게 이 미술관이 마치 땅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무엇보다 미술관의 벽은 문화예술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지역에서 그 지역의 풍토를 기반으로 문화와 예술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방문자들에게 전달한다. 많은 사람들이 설악산과 그 인근에 바위가 많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조건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물론 지방에 미술관이 반드시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해 지역의 풍토를 예술로 승화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현재 고성군에는 3개의 미술관과 3개의 박물관이 있다. 그중 사립으로 등록된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바우지움미술관이 유일하다. 그래서 바우지움미술관에서 ‘지움’은 앞서 언급한 뮤지엄에서 따온 ‘지움’이 아니라 ‘재료를 들여 밥, 옷, 집 따위를 만든다’는 의미의 ‘짓다’와 더 연관돼 있어 보인다. 바우지움미술관은 땅이 지닌 풍토에서 문화와 예술을 ‘짓기(cultivate)’ 때문에 우리에게 더 의미 있는, 바위로 ‘지은(build)’ 집이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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