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겹의 돌담으로 둘러싸인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힐링 공간’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2023. 8. 1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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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바위로 지은 ‘바우지움미술관’
강원도 고성에 2015년 건립한 시립미술관
바위 지역사투리 ‘바우’·‘뮤지엄’ 합성어
동네 이름 ‘원암리’… 바위가 으뜸인 마을
대관령 터널 공사장 쇄석 모아 벽 만들어
근현대조각관·김명숙조형관·별관 등 건물
설악산 울산바위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

규모가 큰 산은 흙산이 아니라 바위산이다. 그래서 ‘큰 산’을 뜻하는 ‘악(岳, 嶽)’ 자가 이름에 들어간 산은 면적도 넓지만 바위 때문에 험준하다. 등산객들이 ‘악’이라는 글자가 이름에 들어간 산을 오르면 ‘악’ 소리가 난다고 괜히 말하는 게 아니다. 바위들이 많다 보니 이런 산에는 산을 대표하는 기암이 하나씩 있다. 치악산에는 삼형제바위, 월악산에는 아들바위, 관악산에는 연주대 옆에 불꽃바위가 바로 그런 예다. 그리고 누가 선정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의 5대 명산’ 중 하나인 설악산에는 울산바위가 단연 최고의 스타다.

6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울산바위를 보고 있으면 그 웅장함에 압도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울산바위 주변에 배치된 리조트 건물들은 대부분 울산바위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울산바위에서 북동 방향으로 4㎞가량 떨어진 땅에 들어선 바우지움미술관도 울산바위를 바라보고 있다.
조각이 재료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다듬어 조형을 만들어 낸 예술 작품이라면 조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바우지움미술관은 쇄석과 콘크리트가 우연히 지어낸 벽의 건축이다. 그리고 지역 풍토를 기반으로 문화와 예술을 짓고 있는 조각을 위한 집이다.
‘바위’의 강원도 사투리인 ‘바우’와 ‘뮤지엄(museum·박물관)’에서 따온 ‘지움’을 합쳐 만들었다는 이름을 통해서도 이 미술관이 울산바위를 비롯한 설악산의 바위들과 관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미술관이 들어선 동네는 ‘원암리(元巖里)’로, 이름 그대로 해석하자면 ‘바위가 으뜸이고 근원이 되는 마을’이다. 여기에 설계자 김인철은 미술관에 있는 누런 돌들이 울산바위가 솟아오를 때 굴러 내렸을 거라는 개연성까지 더했다.

운이 좋지 않게도 바우지움미술관에 갔을 때 안개에 가려 울산바위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바우지움미술관이 지닌 그 자체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우지움미술관의 첫 번째 매력은 끊어진 듯 이어져 있는 단속적(斷續的)인 공간구성이다. 미술관은 크게 근현대조각관-김명숙조형관-별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건물은 동쪽-서쪽-동쪽으로 각각 엇갈려 배치돼 있다. 그래서 방문자들이 세 건물과 각각의 야외공간으로 가려면 ‘ㄹ’ 자 형태로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런데 각 공간에서는 그다음 공간으로 연결되는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없다. 마치 미로처럼 입구 뒤에 벽을 놓고 직각으로 동선을 꺾었기 때문이다.

미술관 입구와 그 앞에 배치된 하늘을 쳐다보는 조각 작품
바우지움미술관의 세 공간은 그 자체로 완성적이다. 공간의 용도도 상설전시-작업실 및 전시실-특별전시로 대별되고 그 안의 야외공간을 이루는 요소도 물-자갈-잔디로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 세 공간의 개성과 벽으로 둘러싸여 생기는 아늑한 느낌(위요감; 圍繞感)은 언뜻 닫혀있는 듯한 개구부로 인해 상실되지 않는다.

두 번째 매력은 조각과 건축이 상호보완을 이루는 장면이다. 바우지움미술관은 2015년 현대 조각의 대중화와 발전을 위해 치과의사 안정모 박사와 조각가 김명숙 관장 부부가 건립한 사립미술관이다. 당연히 미술관에는 조각 작품만 전시돼 있다. 조각은 회화와 달리 벽에 종속되지 않고 전시될 수 있다. 그래서 조각을 위한 미술관에서 벽은 회화를 위한 미술관과 달리 흰색일 필요도 없고 심지어 막혀 있지 않아도 된다.

바우지움미술관에서도 전시실의 벽은 매끈한 노출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거나 투명한 유리로 처리돼 있다. 그래서 야외공간의 풍경뿐 아니라 먼 거리에 있는 울산바위와 가까이 있는 다른 조각품들이 작품의 배경이 된다. 미술관 주변의 풍경은 움직이지 않는 조각을 앞에 두고 끊임없이 변하는 스크린이다. 그리고 다른 조각품들과 함께 보는 조각 작품은 다른 맥락을 이룸으로써 그 하나만 봤을 때는 떠오르지 않았던 의미를 갖게 된다.
쇄석을 거푸집에 넣고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미술관의 벽
전시관의 벽이 조각의 배경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가느다란 기둥에 있다. 바우지움미술관은 모두 단층 건물이어서 전시관의 기둥은 지붕만 지지하면 된다. 가느다란 기둥은 바깥 풍경으로 향하는 시야를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 솔직히 기둥을 없앨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같은 맥락으로 징크판(Zinc版)으로 마감된 지붕을 지금보다 더 얇게 만들었다면 전시관은 건물이 아닌 파빌리온(pavilion)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그러면 지금보다 건물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설악산과 그 주변에서 캐낸 조각’이 더 확실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세 번째 매력은 벽의 역할이다. 바우지움미술관에서 벽의 가장 큰 역할은 건물이 들어선 땅과 미술관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특히, 입구로 연결되는 통로 양쪽의 키보다 높은 벽은 마치 방금 땅에서 융기한 듯하다. 통로 끝에 놓인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조각 작품은 쇄석을 밟을 때 나는 자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입구까지 들어온 방문객에게 이 미술관이 마치 땅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더불어 벽은 조각의 반대적인 속성을 드러냄으로써 조각 전문 미술관이라는 차별성을 강조한다. 건축가 김인철은 대관령 터널 공사장에서 가지고 온 쇄석을 거푸집에 넣고 콘크리트를 부어 벽을 만들었다. 즉, 벽은 건축가가 지역의 돌을 활용해 의도적으로 구축한 결과다. 이는 돌(재료)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조각과 비교하면 반대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쇄석을 거푸집에 넣고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미술관의 벽
미술관의 벽을 보고 있으면 콘크리트로 굳어진 쇄석의 조합이 이루는 문양에 집중하게 된다. 그 문양이 애초부터 무언가를 의도하지는 않았기에 구체적인 사물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무작위적인 배열 속에서 패턴을 발견하려는 심리적 현상(파레이돌리아; pareidolia) 때문인지 한참을 보고 있으면 사람 얼굴이나 동물, 구름과 같은 구체적인 형상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형상은 벽에 포함돼 있어서 바우지움미술관이 다루지 않는 회화 작품을 보는 듯하다.

무엇보다 미술관의 벽은 문화예술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지역에서 그 지역의 풍토를 기반으로 문화와 예술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방문자들에게 전달한다. 많은 사람들이 설악산과 그 인근에 바위가 많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조건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물론 지방에 미술관이 반드시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해 지역의 풍토를 예술로 승화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현재 고성군에는 3개의 미술관과 3개의 박물관이 있다. 그중 사립으로 등록된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바우지움미술관이 유일하다. 그래서 바우지움미술관에서 ‘지움’은 앞서 언급한 뮤지엄에서 따온 ‘지움’이 아니라 ‘재료를 들여 밥, 옷, 집 따위를 만든다’는 의미의 ‘짓다’와 더 연관돼 있어 보인다. 바우지움미술관은 땅이 지닌 풍토에서 문화와 예술을 ‘짓기(cultivate)’ 때문에 우리에게 더 의미 있는, 바위로 ‘지은(build)’ 집이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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