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새만금 잼버리가 남긴 것
참으로 괴로운 열이틀이었다. 8월12일이 오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현장이 엉망이라는 소식이 들려온 8월1일부터다. 한동안은 식당에 가면 양쪽에서 잼버리 이야기가 들렸다. 모두 어서 시간이 흐르기만 바랐을 것이다. 그저 끝나기만 바란 게 아니라 어떻게든 잘 진행되기를 염원한 것인데, 그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이제부터 이 ‘파행’이 누구 책임인지 국무조정실과 감사원, 임시국회에서 따지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친들 진짜 원인이 드러날 것 같지 않다. 예산 잘 썼는지 영수증과 계약서를 들여다본다고 답이 있지 않을 것이다. 책임자 불러내 호통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보고서 인쇄 잘해서 꽂아놓는 것으로 마무리할 문제도 아니다.
이 처참한 파행은 그동안 한국인들이 당연하게 여겨온 많은 것들을 되짚어보라는 신호다. 그동안 우리는 올림픽, 엑스포 같은 국제행사를 유치하면서 ‘경제 발전을 위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라는 말을 자연스레 해왔다. 실제 그런 효과를 확인한 바도 거의 없으면서 되풀이했다. 그 행사와 거기 참여하는 사람들을 경제적 이득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우리는 또 외국인을 대할 때 그들이 한국의 문화와 음식, 기술 등을 접하고 놀라거나 만족하는 모습을 보기만을 기대해왔다. 방송이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이건 그런 영상이 넘쳐나는데도 폭식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더 갈구했다. 그렇게라도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열망도 일종의 지배욕일 수 있다는 생각은 별로 해보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잊어버린 게 있다. 바로 ‘가치’다. 우리는 가치를 말할 때 ‘경제적 가치’부터 떠올리는 게 습관이 돼서 본질을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올림픽에도, 엑스포에도, 잼버리에도 고유한 가치가 있는데도 관심이 없었다. 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고 할 때, 그 만남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만남과 교류를 통해서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장을 잘 마련해 주는 것이 국제행사를 주최하는 목적이고 의의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잼버리 ‘파행’의 순간은 시설과 운영의 문제가 드러났을 때부터가 아니었다. 폭염과 태풍으로 대원들이 영지를 떠나게 됐을 때도 아니다. 이들을 어서 도시로 보내라고, 에어컨 있는 실내로 보내라고, 관광을 시키라고, K팝 콘서트를 보게 하라고 대통령과 국민이 외치고 나선 데서부터 진짜 파행은 시작됐다. 우리가 아는 외국인들은 다 그런 걸 좋아하니 너희도 그럴 것이라고 단정해버린 것이었고, 그들이 왜 잼버리에 참여했는지 이유 같은 건 알려고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게 열이틀을 채우기는 했다. 대부분 대원들은 그래도 손을 흔들어주고 귀국길에 올랐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뭘까? 시스템은 없고 임기응변만 있는 국가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고, 한국 대기업은 정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상기시켰고, 지방은 한계가 있으니 뭐든 서울로 올려보내야 한다는 통념은 강해졌다. 여성가족부는 더 빨리 폐지될 것이다. 그게 전부인가 보다. ‘경제적 효과’라고는 일원어치도 없는 철저한 실패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조차 아니라면 우리는 벌써 이 일을 잊었을 것이다.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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