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무한리필이라면서요?"…'민폐' vs '사기' 갑론을박 [이슈+]
업주 '업무방해죄' vs 손님 '사기죄'
전문가 "'신의성실의 원칙' 따져볼 문제"
"'무한 리필 식당'에서 손님이 어느 정도까지 먹는 것을 용인해야 할까요?"
최근 들어 자영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논쟁거리 중 하나다. 무한 리필 식당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음식을 양껏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음식량 적정선'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무한 리필' 간판을 내세운 업주 중 일부 '민폐 손님'들에 못 견디고 업종을 바꿨다는 고백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외식 물가가 고공행진하면서 무한 리필 식당이 소비자들의 주목을 더 받고 있다. 검색 데이터 분석사이트 아하트렌드가 공정거래위원회 가맹 사업자로 등록된 외식 프랜차이즈 3800개 브랜드의 올해 1~4월 검색량을 조사한 결과, '고기 뷔페', '한식 뷔페', '일식·초밥 뷔페' 등 무한 리필 식당의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102% 급증했다.
이런 형태의 식당은 고물가 속 주머니 사정이 여의찮은 이들에게 반가운 공간이지만, '무한 리필'의 횟수를 두고 업주와 손님 사이 실랑이가 벌어지는 일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지난 13일 자영업자들이 모인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인당 5만원 무한 리필 회전초밥집에서 170접시 먹고 쫓겨난 손님 사연'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자영업자들 사이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글 게시자 A씨는 친구 2명과 함께 100분 동안 무한 리필로 먹을 수 있는 인당 5만원짜리 회전초밥집을 찾았다며 "저는 육사시미만, 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특정 초밥만, 다른 친구는 연어 관련 초밥만 계속 먹었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1시간쯤 지났을 당시 사장이 "그만 나가달라"고 요구했다는 것.
A씨는 "사장님이 '여러 다른 초밥 안 먹고 특정 비싼 초밥만 쏙쏙 골라 먹는 건 예의가 아니다'라며 '초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마진이 안 남는다'라는 게 이유라고 하더라"라며 "돈 내고 나가라길래 '더 먹을 거다'라고 하니 영업방해로 경찰에 신고한다고 했다"고 했다. 이어 "(우리 일행도) '무한 리필이고 시간도 안 됐는데 내쫓는다고 하니 사기죄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다투다가 경찰이 와서 중재하고 끝났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A씨는 "1인당 대충 50~60접시 먹었다고 내쫓는 사람이 문제냐, 아니면 특정 비싼 초밥만 엄청나게 먹은 사람이 문제냐. 성인 남성 3명이 총합 170접시가량 먹은 게 진상이냐"라고 물었다. 이에 일부는 "300그릇을 먹어도 감당 못할 거면 무한 리필을 내걸면 안 된다", "몇 접시를 먹든 무한 리필이면 자유", "무한 리필인데 왜 눈치를 보면서 먹어야 하냐" 등 업주를 비난한 한편, "사람이라면 '적정선'이라는 게 있지않냐", "업주뿐 아니라 손님에게도 민폐", "많이 먹어도 되지만, 170접시는 너무했다" 등 반응도 나왔다.
업주와 A씨는 각각 영업방해죄, 사기죄를 내세우며 대립했으나, 이들 모두 처벌받을 가능성이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김가헌 법무법인 일호 변호사는 "실질적으로 업무방해의 결과가 발생했지만, 특정 초밥만 골라 먹는 행위를 형법상 '위계', '위력'이라고까지 하기는 어려워 업무방해죄는 성립하지 않을 듯하다"라며 "또한 업주가 손님을 '기망'했다고 보기 어렵고, 손님도 어떠한 '재산상 손해'를 입지도 않았으므로, 사기죄도 성립하지 않을 듯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특정 초밥만 170접시나 골라 먹는 행위는 사회 통념상 위법한 수준으로 평가받을 수 있고, 따라서 업주는 손님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적 절차는 사후적일 뿐 아니라,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므로, 사전에 적절한 수준으로 비용을 추가 부담하게 할 수 있다는 안내문을 게시해 상호 분쟁을 예방하는 것이 좋지 싶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무한 리필 적정선' 논쟁을 두고 '신의성실의 원칙'을 따져봐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시됐다. 현행법상 민법 제2조에는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권리 의무의 양 당사자는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하면서 '신의'와 '성실'로써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상대방의 정당한 이익을 고려하고 상대방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행동하여야 하며, 형평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무한 리필'이라는 조건 자체가 손님을 끌기 위해서 내건 조건일 텐데, 손님이 과하게 먹어도 업주 입장에서 제지할 근거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소비자가 상식적인 선에서 소비해야지 상생하는 건데, 아무리 무한 리필이라고 해도 글자 그대로를 두고 업주에게 과도한 피해가 가게끔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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