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갇혀 산 암사자 '사순이'…숲에서 1시간 앉아있다 하늘로 [사건수첩]
“생포했어야” 의견도 빗발
맹수 ‘사육 허가’ 비교적 간단
“전국적으로 맹수 관리 실태 점검해야”
경북 고령군 덕곡면 한 목장에서 키우던 암사자가 우리에서 탈출했다. 새끼 때부터 길러진 암사자는 탈출해도 멀리 벗어나지 않고 우리 30m 밖 수풀에서 발견됐다. 사람이 모여들어도 도망가거나 적대감은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인명피해 우려 판단에 암사자는 신고 1시간여 만에 엽총에 맞아 사살됐다. 이 때문에 생포하지 않고 사살한 것이 적절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우리 30m 수풀서…신고 1시간 만에 엽총 ‘탕탕’
14일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24분쯤 목장 관리인이 “암사자가 우리에서 탈출해 산으로 도주했다”고 신고했다. 상황은 전달받은 마을 이장은 군에 암사자 탈출 사실을 알렸다. 군은 오전 7시46분쯤 ‘암사자가 탈출했다’는 재난안전문자를 보내 주민을 대피시켰다.
사순이가 머물던 철제 우리는 크게 철제 창살을 쳐 둔 외부 공간 두 곳과 실내 공동공간으로 나뉜다. 관리인이 분리된 공간 중 한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 청소하는 사이 다른 공간에 있던 사자가 공동 공간 문을 통해 외부로 빠져나갔다고 한다.
목장 관리인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 경황이 없어서 (대답하기) 힘들다”면서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길이어서 더는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그간 사자 민원 잇따라…“생포했어야” 의견도 빗발
목장에서 300m가량 떨어진 캠핑장에서는 사자 탈출 소식에 수십명의 캠퍼들이 급히 대피했다. 사순이는 캠퍼들 사이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동물원과는 달리 눈앞에서 사자를 볼 수 있어 일부러 고령군까지 찾는 캠퍼가 많았다고 한다.
사순이와 관련해 그간 민원이 많았다는 말이 나왔다. “좁은 우리에서 지내는 사자가 불쌍해 민원을 넣은 적이 있는데 ‘개인이 합법적으로 데려온 거여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누리꾼이 잇따랐다.
그러나 혹시 모를 인명피해를 우려해 어쩔 수 없이 사살했다는 게 관계 당국의 설명이다. 군 관계자는 “아무리 온순해도 사자는 맹수다”며 “인근에 캠핑장과 민가가 있어 마취가 잘못되면 사자가 오히려 더 난폭해질 수 있어 사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맹수 ‘사육 허가’ 비교적 간단…사체는 어떻게?
‘야생동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멸종 위기 2급 동물인 사자는 정식 통관 절차를 거치면 사육할 수 있다. 사육 신청이 들어오면 담당 직원이 현장 점검 뒤 허가를 내주는데 요건이 까다롭지 않다. 다만 맹수 사육장과 방사장은 마리당 14㎡ 면적과 2.5m 높이의 펜스를 갖춰야 한다.
사순이는 국제멸종위기종 2급인 ‘판테라 레오’ 종이다. 2008년에 ‘경북 봉화군에서 고령군으로 옮겨 사육하겠다’고 대구지방환경청에 신고된 개체로 합법 절차를 거친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지방환경청은 사자 우리를 지난해 9월 고령군과 함께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전국적으로 맹수 관리 실태 점검해야”
온라인에서는 사순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사살 소식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풀숲에 얌전히 숨어있던 사자를 굳이 사살해야 했냐” “인간이 잘 못해놓고 왜 죽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2018년 대전 오월드 동물원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퓨마 ‘뾰롱이’ 사건도 재조명되고 있다. “이참에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개인 사육시설에서 맹수가 탈출하는 일은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월 강원 강릉시 한 동물농장에서 기르던 새끼 사자 2마리가 우리에서 탈출했다가 마취총을 맞고 2시간30분 만에 생포됐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울산시 울주군 한 무허가 곰 사육농장에서 반달가슴곰 3마리가 탈출했다가 사살됐다.
최근 맹수 보호시설 요건을 강화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 개정안이 올해 말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에는 사육사나 관람객 안전을 위해 사자 등 맹수의 보호 및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개인이 맹수를 키울 때 사육 허가와 같은 근본적인 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령군 주민 70대 김씨는 “전국적으로 맹수 관리 실태를 대대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면서 “좁은 우리에 갇혀 사는 동물의 복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령=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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