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갇혀 산 암사자 '사순이'…숲에서 1시간 앉아있다 하늘로 [사건수첩]

배소영 2023. 8. 14. 19: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고 1시간 만에 엽총에 사살
“생포했어야” 의견도 빗발
맹수 ‘사육 허가’ 비교적 간단
“전국적으로 맹수 관리 실태 점검해야”

경북 고령군 덕곡면 한 목장에서 키우던 암사자가 우리에서 탈출했다. 새끼 때부터 길러진 암사자는 탈출해도 멀리 벗어나지 않고 우리 30m 밖 수풀에서 발견됐다. 사람이 모여들어도 도망가거나 적대감은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인명피해 우려 판단에 암사자는 신고 1시간여 만에 엽총에 맞아 사살됐다. 이 때문에 생포하지 않고 사살한 것이 적절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우리 30m 수풀서…신고 1시간 만에 엽총 ‘탕탕’

14일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24분쯤 목장 관리인이 “암사자가 우리에서 탈출해 산으로 도주했다”고 신고했다. 상황은 전달받은 마을 이장은 군에 암사자 탈출 사실을 알렸다. 군은 오전 7시46분쯤 ‘암사자가 탈출했다’는 재난안전문자를 보내 주민을 대피시켰다.

현장에는 경찰과 소방, 고령군 소속 엽사 등 160여명이 출동했다. 탈출한 암사자는 1시간10분 만인 오전 8시34분쯤 발견됐다. 우리에서 20∼30m 떨어진 수풀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수색에 투입된 엽사 2명이 20m 거리에서 엽총 2발씩 쐈다. 결국 암사자는 쓰러졌다.
14일 고령군 덕곡면 한 목장에서 탈출한 사순이가 우리에서 30m 떨어진 수풀에 숨어 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암사자의 이름은 ‘사순이’었다. 사순이가 머물던 목장은 해발 355m에 위치해 있다. 사순이는 새끼 때부터 20년가량 갇혀 산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암수 사자를 함께 사육했는데 농장주가 농장을 인수하기 전 수사자는 죽었다고 했다.

사순이가 머물던 철제 우리는 크게 철제 창살을 쳐 둔 외부 공간 두 곳과 실내 공동공간으로 나뉜다. 관리인이 분리된 공간 중 한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 청소하는 사이 다른 공간에 있던 사자가 공동 공간 문을 통해 외부로 빠져나갔다고 한다.

목장 관리인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 경황이 없어서 (대답하기) 힘들다”면서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길이어서 더는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그간 사자 민원 잇따라…“생포했어야” 의견도 빗발

목장에서 300m가량 떨어진 캠핑장에서는 사자 탈출 소식에 수십명의 캠퍼들이 급히 대피했다. 사순이는 캠퍼들 사이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동물원과는 달리 눈앞에서 사자를 볼 수 있어 일부러 고령군까지 찾는 캠퍼가 많았다고 한다.

사순이와 관련해 그간 민원이 많았다는 말이 나왔다. “좁은 우리에서 지내는 사자가 불쌍해 민원을 넣은 적이 있는데 ‘개인이 합법적으로 데려온 거여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누리꾼이 잇따랐다.

목장 경영을 이어받은 지 1년 됐다는 목장주는 “사자를 키우고 싶어서 키운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경청에 사자 처리를 요청하며 동물원에 기부나 대여하길 요청했으나 맹수 특성상 서열 다툼이 나면 동물원의 다른 사자가 죽는 등 우려로 다들 거부했다고 한다”며 “직전 주인도 처분하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14일 고령군 덕곡면 한 목장에서 탈출해 사살된 사순이. 경북소방본부 제공 
탈출한 사순이를 사살하지 말고 생포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빗발치고 있다. 실제로 암사자는 새끼 때부터 길러와 평소에 주인에게 애교도 부리고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을 정도로 온순했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혹시 모를 인명피해를 우려해 어쩔 수 없이 사살했다는 게 관계 당국의 설명이다. 군 관계자는 “아무리 온순해도 사자는 맹수다”며 “인근에 캠핑장과 민가가 있어 마취가 잘못되면 사자가 오히려 더 난폭해질 수 있어 사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맹수 ‘사육 허가’ 비교적 간단…사체는 어떻게?

‘야생동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멸종 위기 2급 동물인 사자는 정식 통관 절차를 거치면 사육할 수 있다. 사육 신청이 들어오면 담당 직원이 현장 점검 뒤 허가를 내주는데 요건이 까다롭지 않다. 다만 맹수 사육장과 방사장은 마리당 14㎡ 면적과 2.5m 높이의 펜스를 갖춰야 한다.

사순이는 국제멸종위기종 2급인 ‘판테라 레오’ 종이다. 2008년에 ‘경북 봉화군에서 고령군으로 옮겨 사육하겠다’고 대구지방환경청에 신고된 개체로 합법 절차를 거친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지방환경청은 사자 우리를 지난해 9월 고령군과 함께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그러나 사순이 사육의 합법 여부를 놓고 당초 고령군의 입장은 혼선을 빚게 했다. 고령군은 “민간 목장에서 사자를 키우고 있었던 사실은 몰랐다”고 했으나 이후 “목장은 합법적으로 운영 중이고 국제멸종위기종 허가를 받아 적법하게 사자를 사육 중이었다”며 입장을 바꿨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맹수 탈출 사례는 처음 겪는 일로 군청에 전화가 쏟아지다 보니 혼선이 있었다”며 “축산과에서 맹수 개체를 파악하고 있는데 환경과로 전화 문의가 잇따라 잘못된 사실이 전해졌다”고 설명했다.
경북 고령군청. 고령군 제공
사순이의 사체는 현재 고령군 환경과로 인계돼 환경시설관리공단 고령사업소에서 보관하고 있다. 대구지방환경청과 고령군, 목장주가 논의를 거친 후 처리법을 정한다. 맹수 사체 처리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박제하거나 매장 또는 소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전국적으로 맹수 관리 실태 점검해야”

온라인에서는 사순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사살 소식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풀숲에 얌전히 숨어있던 사자를 굳이 사살해야 했냐” “인간이 잘 못해놓고 왜 죽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2018년 대전 오월드 동물원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퓨마 ‘뾰롱이’ 사건도 재조명되고 있다. “이참에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개인 사육시설에서 맹수가 탈출하는 일은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월 강원 강릉시 한 동물농장에서 기르던 새끼 사자 2마리가 우리에서 탈출했다가 마취총을 맞고 2시간30분 만에 생포됐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울산시 울주군 한 무허가 곰 사육농장에서 반달가슴곰 3마리가 탈출했다가 사살됐다.

최근 맹수 보호시설 요건을 강화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 개정안이 올해 말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에는 사육사나 관람객 안전을 위해 사자 등 맹수의 보호 및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개인이 맹수를 키울 때 사육 허가와 같은 근본적인 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령군 주민 70대 김씨는 “전국적으로 맹수 관리 실태를 대대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면서 “좁은 우리에 갇혀 사는 동물의 복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령=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