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Mudjima’ 범죄
1884년 처음 출간된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영어권 단어 60만개가 수록된 세계 최대 규모의 권위 있는 사전이다. 여기에 처음 등재된 우리말이 1976년 김치(kimchi)와 막걸리(makkoli)였다. 이후 2020년까지 45년 동안 총 20개의 한국어 단어가 실렸다. 한글(hangul)·태권도(taekwondo)·비빔밥(bibimbap) 등이다. 한국 고유의 문물로 세계가 각인한 단어들이다. 그러다 2021년에 한국어 26개가 한꺼번에 이 사전에 오른다. 불고기(bulgogi)·치맥(chimaek)·먹방(mukbang)·언니(unni)·오빠(oppa)·애교(aekyo)·대박(daebak)·파이팅(fighting)…. 한류 확산과 더불어 국제 공용어로 통하는 한국어가 부쩍 늘어난 것이다.
지금은 누구나 떼창에 익숙해진 해외 K팝 팬들의 역할이 컸다. 이들이 한글 가사나 표현을 알파벳으로 옮겨 쓰기 시작한 것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우리말 단어가 해외 각지에서 그대로 통했다. ‘사랑해’는 ‘saranghae’로 충분했고 언니·오빠 외에 형(hyung)·누나(noona)·막내(maknae)도 친근하게 불렀다. 이런 단어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이돌과 훈민정음을 합친 ‘돌민정음’이다. 이를 통해 한국 정서가 담긴 ‘좋은’ 말들이 해외에 스며들었다.
그런데 세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한국어 단어도 계속 나오고 있다. 2021년 4월 재·보궐 선거 직후 뉴욕타임스가 한국의 사회 현상으로 꼽은 ‘내로남불’(naeronambul)이 대표적이다. 영국 BBC는 2019년에 한국어 ‘꼰대’(kkondae)를 ‘오늘의 단어’로 선정했다. 그 이전에는 ‘갑질’(gapjil)이라는 단어가 외신에 보도됐고, ‘재벌’(chaebol)은 한국에만 있는 가족 소유의 대기업 형태로 옥스퍼드 사전에 올라 있다. 최근 CNN은 국내 사교육 과열을 비판하며 한국의 ‘학원’을 ‘hagwon’으로 표기했다. “학생들은 수업 후 hagwon에 가야만 한다”고 했다.
‘묻지마 범죄’도 한국산 국제 통용어가 됐다. BBC가 13일 국내에서 잇따라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을 보도하며 ‘묻지마’를 영문 그대로 적은 ‘Mudjima’를 제목과 본문에 썼다. 한국에서 ‘묻지마’ 범죄가 속출해 시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한국의 폭력 범죄 비율이 낮은 편이라고 썼지만, ‘묻지마’를 영어로 옮긴 것 자체가 한국만의 현상으로 오인시킬 우려가 있어 불편하다. 한국 사회의 나쁜 면을 세계에 알리는 단어는 그만 나왔으면 한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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