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외교 맞선 시민의 힘…강제동원 피해자에 응원기금 1억씩 전달

정대하 2023. 8. 1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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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의와 평화로운 한일관계를 위한 공동행동'(이하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14일 오후 2시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245 광주엔지오센터 시민마루에서 강제동원 생존 피해자 2명과 가족, 시민 등을 초청해 '역사정의 시민모금 전달식 및 응원의 자리'를 마련했다.

앞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지난 12일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 확정 승소 판결(2018년 10~11월)을 받은 피해자 15명 중 한국 정부가 대신 지급하는 판결금 수령을 거부한 피해자 4명(생존 2명)에게 '응원 기금' 1억원씩을 각각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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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모금 40여일만에 5억여원 모아
이춘식·양금덕, 고 박해옥·정창희 유족 등에 1억씩 전달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지난 7일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씨의 자택을 방문해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역사정의와 평화로운 한일관계를 위한 공동행동’(이하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14일 오후 2시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245 광주엔지오센터 시민마루에서 강제동원 생존 피해자 2명과 가족, 시민 등을 초청해 ‘역사정의 시민모금 전달식 및 응원의 자리’를 마련했다.

앞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지난 12일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 확정 승소 판결(2018년 10~11월)을 받은 피해자 15명 중 한국 정부가 대신 지급하는 판결금 수령을 거부한 피해자 4명(생존 2명)에게 ‘응원 기금’ 1억원씩을 각각 전달했다. 응원 기금 전달 대상은 이춘식(99·광주광역시 광산구)씨와 양금덕(92·광주광역시 서구)씨 등 생존 피해자 2명과 고 박해옥(1930~2022)씨와 고 정창희(1923~2012)씨 등 피해자 2명의 유족이다. 이들은 “강제동원에 대한 사과나 일본 가해 기업의 참여 방안도 없는 상태에서 한국 정부가 판결금을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역사정의평화행동은 14일 광주 전일빌딩245 광주엔지오센터 시민마루에서 양금덕(왼쪽 셋째)씨와 이춘식씨의 딸 이고은(넷째)씨 등 강제동원 생존 피해자 2명과 가족들을 초청해 응원의 자리를 마련했다. 정대하 기자

조선여성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로 일본과 한국의 법정에서 31년째 재판 투쟁을 하는 양금덕씨는 “날개가 있으면 날아갈 것 같다. 감사하다”며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우리 힘으로 이렇게 헤치고 나가는 것을 참 거룩하게 생각한다. 바른 정신으로 분발해 강하게 살아가자”고 호소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손해배상 확정판결을 받고도 배상하지 않고 있다.

생존 피해자 이춘식씨는 건강상의 문제로 참석하지 못하고 가족이 참석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씨는 1943년 1월 이와테현 소재 신일본제철(현 일본제철) 가마이시 제철소에서 2년간 일했지만, 임금을 받지 못했다. 일본제철은 “다 적금하데끼 저금해준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해방 후 임금을 받기 위해 공장에 찾아갔지만, “이렇게 쫄딱 망했는디 뭔 돈이 있겄냐?”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가 시작되자 “나 때문에 대한민국이 손해가 아닌지 모르겠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지난 7일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씨를 찾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고 정창희씨는 1944년 9월 일본 히로시마 미쓰비시조선소로 강제동원됐다. 이듬해 8월6일 원폭이 투하되었을 때 공장에 있었던 그는 그해 9월 귀국해 1년 후부터 건강이 나빠졌다. 고인은 2012년 3월 세상을 뜨는 바람에 2018년 11월29일 대법원 원고 승소 확정판결 결과를 보지 못했다. 고 박해옥씨는 일본인 교장의 압박에 못 이겨 1944년 5월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중공업으로 강제동원됐다. 1999년 3월부터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끈질긴 소송전에 나섰지만, 지난해 2월 일본 기업의 사죄와 손해배상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이날 응원기금 전달식엔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단체’ 다카하시 마코토(81) 공동대표가 참석해 6만3천엔을 응원기금으로 전달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가해국 시민으로서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가슴이 아프고 죄송한 마음이다”며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가 “이기자”라고 외치자, 참석자들이 “이기자”로 화답했다.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단체’ 다카하시 마코토 공동대표(가운데)가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이사장에게 응원기금을 전달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전국 600여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지난 6월29일 3자변제 방식에 반대한 피해자 4명을 위한 응원기금을 모으는 시민운동에 나서 13일까지 5억4188만원(7834건)을 모금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2차 시민 성금 모금을 이어갈 방침이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시민모금 운동을 시작한 지 불과 40여일 만에 모금액이 5억원을 넘긴 것은 윤석열 정부의 굴욕 외교에 대한 준엄한 심판의 결과”라고 밝혔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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