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숙 칼럼] 사라진 철근

최진숙 2023. 8. 1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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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여편네들이 비슷한 형편의 살림을 하고 있었다."

작가 박완서의 단편 '닮은 방들'에서 주인공 여자는 아파트 입주를 끝낸 뒤 이런 평을 한다.

여자의 눈에는 자신의 십팔 평짜리 아파트 이웃집들이 하나같이 서로의 복사판으로 비친다.

한국형 1세대 아파트를 대표하는 키워드 첫 줄에 '닮은 방'의 동의어 '붕어빵'이 들어갈 확률은 거의 10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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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여편네들이 비슷한 형편의 살림을 하고 있었다."

작가 박완서의 단편 '닮은 방들'에서 주인공 여자는 아파트 입주를 끝낸 뒤 이런 평을 한다. 여자의 눈에는 자신의 십팔 평짜리 아파트 이웃집들이 하나같이 서로의 복사판으로 비친다. 여자는 확신했다. 자신이나 옆집 철이 엄마나 딴 방 여자들 모두는 서로 닮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닮은 방들'은 1974년 나왔다. 서울 강남 개발의 신호탄이었던 반포 단지의 완공도 그해 이뤄졌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서울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1970년대가 투영된 소설이다. 한국형 1세대 아파트를 대표하는 키워드 첫 줄에 '닮은 방'의 동의어 '붕어빵'이 들어갈 확률은 거의 100%다.

거대하면서도 똑같이 생긴 서울의 아파트 형체에 기겁해 이를 연구 주제로 삼았던 이가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다. 10년 넘게 발품을 팔아 펴내 화제가 됐던 '아파트 공화국(2007년)'은 지금 보면 빗나간 대목도 적진 않다. 무엇보다 그토록 비범하고 광활한 추적 끝에 내린 결론의 현실성이다. 줄레조는 "한국에서 주택이 유행 상품처럼 취급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단지 아파트는 대규모 도시 문제로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지금의 서울은 이를 비웃듯 건재하다. 붕어빵 천지였던 아파트 단지들은 적어도 외관상으론 환골탈태를 거듭하며 서울을 떠받치고 있다.

줄레조의 연구에서 지금도 의미 있게 볼 만한 대목은 한국 건설업 속성을 간파한 그의 통찰력이다. 대단지 아파트를 기적의 시대를 풍미했던 대량 생산체제의 직접적 산물로 봤다. 한국 사회가 '양과 속도'의 신조를 따르는 성장 이데올로기에 완벽히 통합됐다는 걸 보여준 지표로 서울의 아파트를 지목했다. 그는 개발시대에 성행했던 정부 구호에 눈이 번쩍 뜨였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문구가 1975년 선포된 '주택 건설 180일 작전!'이다. 실제로 잠실 초기 4개 아파트 단지가 대한주택공사(LH의 전신) 주도로 이 기록적인 시간 안에 건설됐다.

한국 건설업의 토대를 되짚어보는 이유는 지금 무량판 구조의 아파트 부실공사로 나라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있어야 마땅한데 있지 않은 철근의 종적을 찾느라 온 나라가 시끌하다. 자체 발주한 아파트에서만 20곳에서 철근을 빼먹고도 이를 제대로 집계 못한 LH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다. 부실 설계, 감리에 어김없이 전관 카르텔이 확인됐다. 비대해진 몸집으로 정보를 독점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며 이권 추구에만 바빴던 이 조직의 혁신은 스스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일깨워줬다. 정부가 이를 뿌리 뽑지 못하면 정부가 뿌리 뽑힐 수 있다는 각오까지 해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할 것은 '더 빨리, 더 싸게'가 만능 카드로 통하는 건설업 풍토다. 건설사들은 해외에선 고난도 기술로 글로벌 표준을 기막히게 지키면서 국내에선 딴판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공기(공사기간)에 맞춰 묻지마 일처리가 꼬리를 무는 후진적 관행에서 사라지는 건 철근뿐만이 아니다. 현장엔 비전문 고령층·저숙련 외국인들만 남았다. 이러고도 총력전, 속도전으로 달렸다. 참사 일보 직전에서야 멈췄다. 두 눈 뜨고 기본부터 챙기자. 새만금 잼버리가 남긴 교훈과 다르지 않다.

jins@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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