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전범기업 장학생' 램지어 교수 검증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

CBS노컷뉴스 김민수 기자 2023. 8. 1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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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 당시 희생자. 연합뉴스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은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 지역에서 일어난 진도 7.9의 대지진으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40만 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양산한 자연재해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들이 우물에 독을 풀거나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이 퍼졌고 일본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조선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조선인 6천여 명과 중국인 8백여 명이 집단 학살됐다. 올해는 관동대학살 100주기다.  

하버드 로스쿨 존 마크 램지어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매춘을 했다'며 '위안부는 성노예나 전쟁 범죄가 아닌 매춘이었다'는 논문을 2020년 발표해 국내외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램지어 교수는 오래 전부터 이른바 일본 '전범기업 장학생'인 사실이 확인됐다. 그가 주장한 논문의 근거들도 빈약하거나 근거자료 사실확인 없이 '있다'고 가장해 쓴 사실이 드러나 학계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런 램지어 교수는 2019년 발표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논문 '경찰 민영화: 일본의 경찰, 조선인 학살, 그리고 민간 경비 회사'에서 "관동대지진의 혼란에서 조선인을 학살한 일본 자경단은 기능부전의 사회가 만들어낸 경찰 민영화의 한 사례"라며 이를 "정당한 방위 행위였다"고 강변한다.

책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 저자인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의 저널리스트 와타나베 노부유키는 램지어 교수가 논거로 제시했던 신문 기사와 배경, 관보, 후기 연구보고서 등 당시의 실태를 낱낱이 파헤친다.

조선인 학살의 원인이 된 유언비어와 신문기사, 정부가 조작한 '가짜 뉴스'가 나오게 된 배경을 짚어내고 학살의 실상과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을 담아냈다.

저자는 램지어 교수가 논문에 인용한 신문기사들이 주로 오보임을 증명한다.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당시 도쿄와 연결되는 통신 시설은 모두 끊긴 상황이었다. 그나마 일부 구간에 살아있던 철도 통신망을 통해 간간히 소식이 닿았다. 신문기자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본연의 임무를 위해 정보가 되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당시 상황은 저자가 수집한 여러 신문사의 사사(社史)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거리 피난민에게 들은 풍설이나 철도 통신망을 통해 얻은 정보, 군의 전문(電文) 등이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마구 호외로 발행됐다. 재난 상황에서 퍼지는 소문의 진원지나 사실관계를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실린 호외는 유언비어가 사실처럼 잘못된 인식을 심었다.

삼인 제공

저자는 일본 정부가 공공연한 장소에서 벌어진 조선인 학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인 학살을 정당화 하려면 '유언비어가 실재한 것'으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라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문제를 바로 잡기보다 모순된 상황을 꿰맞추기 위해 '없던 일을 있었던 것'으로, '있던 일을 없었던 것'으로 조작한 '권력이 의도적으로 유포한 가짜 뉴스'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과 경찰은 자신들의 관여가 드러나는 것을 숨기려했지만 학살이 공공연하게 목격된 사실이기 때문에 숨기는 대신 사실을 조작해 유언비어에 불과했던 조선인의 범죄를 실재한 것으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조선인 학살의 중요한 배경에 일본의 패전 이후 정국의 불안 속에 '불량선인'이라 불리던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당시 많은 신문이 조선인 관련 범죄에 대해 의심하거나 사실확인 없이 보도했다며 '가호쿠신보'(9월 4일자) 1면 칼럼에는 유언비어로 나도는 조선인 범죄에 대해 "그들의 평소 행동을 보면 있을 법한 일이다"라고까지 표현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사람들이 믿는 유언비어의 중심에 있던 것은 조선인이 집단으로 일본이라는 나라에 싸움을 걸어온다는 구도였다. '불령'이란 '불평을 품고 순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식민지 조선인이 일본에 대해 불평을 품고 있다는 인식이 공유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하나는 재향군인이라는 귀환병들의 존재에 주목한다. 일본군은 동학농민군과의 싸움을 비롯해 1910년 한국 강제병합을 전후해 수만 명의 조선인을 죽였다. 이후에도 3·1운동과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는 조선독립군과 빨치산을 상대로 싸웠던 경험이 있던 재향군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했다.

1918년 일본 전국에서 발생한 쌀값 폭등 사태인 '쌀 소동(米騷動)에 대한 반성으로 경찰이 자경단을 발족했을 때 그 중심에 재향군인을 대거 편입시킨다. 저자는 1923년 관동대지진 재해가 발생하자 유언비어가 이들을 통해 흘러 들어갔다고 본다. 이를 접한 조선 전선에서의 토벌과 학살 경험을 떠올린 이들이 무기를 찾고 망설임 없이 조선인을 죽였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와타나베 노부유키 지음ㅣ이규수 옮김ㅣ삼인ㅣ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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