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애 사진 왜이래요"…민원과 싸우는 軍

권선미 기자(arma@mk.co.kr) 2023. 8. 14. 17: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훈련 빼달라, 약 먹었느냐"
"우리집 힘있고 변호사 샀다"
간부에 전화 걸어 간섭·위협
간부들, 진급에 문제생길까
책임 회피성 민원 응하기도

'헬리콥터맘(자녀를 과보호하는 엄마)'들이 장성한 아들들이 입대한 후에도 '헬기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각종 비상식적인 민원을 제기하며 군 간부들을 괴롭히기 일쑤다. 군 관계자들은 부대 관리나 훈련조차 제대로 되지 않을 지경이라는 하소연을 하고 있다. 헬리콥터맘은 착륙 전의 헬리콥터가 뿜어내는 바람처럼 거센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자녀 주위에서 맴도는 어머니를 빗댄 용어다.

최근 학교 일선에서 일부 극성 학부모들이 악성 민원을 제기하며 교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교총이 지난달 25일부터 9일간 조사한 교권 침해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교권 침해 사례는 학부모가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거나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유형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행태는 학교에 이어 군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한 군 간부는 "이건 교육계만의 일이 아니다"면서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극성 부모들이 온갖 민원을 넣으며 간부들을 괴롭히고 심지어 '힘 있는 집안이다' '우리 집 돈 많다' '변호사 샀다'는 식으로 협박을 하기도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부모들의 걱정이 가장 많은 시기는 아들을 훈련소로 막 보냈을 때다. 훈련병은 올해 7월부터 하루 1시간씩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육군은 2018년 3월 '더 캠프'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배포했다. 이 앱에서는 신병 자대 배치 조회, 신병 교육훈련 안내, 병과 특기 소개, 전역 및 진급일 안내, 커뮤니티 기능 등 다양한 병영 생활 정보를 서비스한다. 장병 휴대전화 사용이 추진 중이던 때 내놓은 앱이어서 현재는 사실상 큰 필요성이 사라진 상태.

문제는 훈련소 간부들이 더 캠프 커뮤니티에 훈련병들이 훈련하는 모습 등을 촬영해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 훈련소 소대장 출신 간부는 "사진을 찍어 올리면 엄마들이 '왜 우리 아이 모습은 보이지 않느냐'며 항의해 일일이 한 명, 한 명 얼굴이 다 보이도록 찍어 올려야 한다"며 "훈련이 아니라 마치 유치원 학예회를 촬영하는 것 같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소대장과 중대장 개인 전화번호로 "우리 아이는 훈련에서 빼 달라" "우리 아이가 몸이 약한데 밥을 잘 챙겨 먹이고 있느냐" "우리 아이 약 먹을 시간인데 약은 먹었느냐"는 식의 연락을 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한 육군 중대장은 "어머니들이 훈련에서 빼 달라는 병사들이 서너 명 있었는데, 병사들만 부대에 남길 수 없어 간부들까지 남기면 훈련 때 병력 손실이 커 내가 훈련 내내 이 병사들을 데리고 다니며 케어했다"며 "당연히 훈련이 잘되지 않았고, 군대가 아니라 마치 병영체험 캠프 같았다"고 하소연했다.

민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부모들이 국민신문고나 국방부로 민원을 넣어버리고, 간부들은 진급에 문제가 생길까봐 '책임 회피성 민원 응하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에는 병사들이 군 생활을 하기 싫어 현역부적합심사를 받게 해달라고 하면 부대에서 민원을 피하기 위해 전역을 시켜주는 추세라고 한다. 현역부적합심사란 군인이 법에 명시돼 있는 사유로 인해 현역 복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심사를 거쳐 강제로 전역하게 하는 제도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임병헌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2017∼2021년)간 복무부적합 판정을 받아 중도 전역한 병사의 숫자가 매년 5000명 이상으로 나타났다. 5년간 중도 전역 병사 수는 약 3만명으로, 3개 사단 규모에 달하는 수준이다.

임 의원은 "결과적으로 5년 동안 2만9062명, 3개 사단을 운용할 정도의 병사가 복무부적합 사유로 전역한 셈"이라며 "일부 병사는 고의로 위험행동을 해 소위 '관심병사'로 지목돼 전역한 경우도 적지 않아 철저한 조사가 요구된다"고 했다.

문근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부모 단체와 군이 공청회를 통해 지금까지 나온 민원을 종합하고 분석과 토의를 거쳐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선미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