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메신저 메디TALK] 밀가루 먹고 운동하다가 쇼크 올수도
◆ 건강메신저 메디TALK ◆
우리는 하루에도 아니 한 끼 식사에도 매우 다양한 식품 성분을 섭취한다. 서구화되는 여러 사회 현상처럼 우리나라에도 식품 알레르기로 인해 식이조절을 해야 하는 환자가 점차 늘고 있다. 학교에서 단체급식을 먹는 아이들은 매해 학년 초면 식품 알레르기 여부와 구체적인 정보를 적어 학교에 제출하고, 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는 알레르기 유발 성분 함유 여부를 메뉴에 표기하고 있다. 대부분 사람이 알레르기 반응 없이 즐겁게 먹는 음식 성분이 예민한 면역체계를 지닌 알레르기 환자에게는 생명에 치명적인 현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는 복숭아 알레르기 환자가 나온다. 입주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국문광(이정은 분)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데, 복숭아 껍질을 긁어 공기 중으로 날리는 극소량에도 극심한 반응이 나타난다. 음식 알레르기는 먹어서 생기는 사례가 대부분이지만 극중 문광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떤 때에는 다른 사람들은 알아차리기도 힘든 극소량으로 아나필락시스와 같은 전신적이며 생명에 위협적인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알레르기내과 진료실에는 다양한 음식 알레르기 환자가 오는데, 그 원인과 회피 방법을 정확히 알려줘도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런 병이 어디 있냐" "그럴수록 계속 노력해 (먹어서) 이겨내야 한다" "지난번에는 괜찮지 않았냐"는 얘기를 듣고 어쩔 수 없이 원인 음식을 먹고 생명이 위협당하는 상황에 빠지게 되는 일이 많다. 계속 이런 현상들이 반복되다 보니 안타까운 마음에 주변 사람들에게 진짜 이런 병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주변인 설명용 진단서'를 써주는 상황이 생기는 걸 보면 식품 알레르기에 대한 우리나라의 사회적 인지도가 낮은 것이 사실이다.
식품 알레르기의 원인은 연령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소아청소년기에는 주로 우유 계란 견과류(땅콩·호두·아몬드 등)가 원인이 되는 반면 성인 환자들은 갑각류(게·새우 등)를 비롯한 해산물과 곡류(밀가루·메밀 등) 견과류 과일류 등에 반응하는 사례가 많다. 사과 복숭아 같은 과일류 알레르기 환자들은 어릴 때 아무 증상 없이 잘 먹다가 어른이 되면서 알레르기가 발생하는 예가 많은데, 이러한 경우에는 오히려 어릴 때부터 알레르기가 있었던 환자보다 더 힘들어하기도 한다. 여름철 복숭아나 가을철 사과가 얼마나 맛있는지 아는데 알레르기가 생긴 이후부터는 먹어서 느끼는 즐거움보다 불편함이 더 커지니 말이다.
갑각류나 견과류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식품 알레르기 원인으로 흔하게 알려져 있다. 이외에 성인이 돼서 나타나는 식품 알레르기 중에는 아주 특이한 패턴을 지닌 식품 알레르기가 몇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식품 의존성 운동 유발 아나필락시스다. 이 병은 원인 식품(밀가루가 대표적)만 먹었을 때는 아무 반응이 없는데, 식품을 섭취하고 운동을 한다든지 술 등과 함께 먹으면 아나필락시스 같은 중증 반응이 생기는 패턴을 보인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에게 식품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리거나 매번 설명하기가 참 쉽지 않을 것 같다.
또한 먹자마자가 아니라 먹고 나서 시간이 다소 지난 다음 증상이 발현되는 알레르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알파갈 증후군이라 불리는 붉은색 육류(돼지고기·소고기·양고기 등) 알레르기다. 알파갈 증후군은 원인 음식을 먹고 수시간이 지나서 생기므로 자다가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해 더욱 위험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처럼 식품 알레르기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와 처음 같이 식사를 하게 된다면, 더욱이 상대방에게 점수를 따야 하는 상황이라면 '못 드시는 음식이 없는지' 물어보시라. 물어봤는데 못 먹는 음식이 없다면 다행인 일이고 못 먹는 음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당신은 매우 사려 깊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배려심 많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런 문화가 확산될 때 우리나라 식품 알레르기 환자들도 안전하게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박경희 교수 (세브란스 알레르기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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