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택배없는 날

심윤희 기자(allegory@mk.co.kr) 2023. 8. 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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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한국에서의 문화 충격 중 하나로 꼽는 것이 '오늘 주문해서 내일 받는 K택배'다. 한국의 배송 속도는 빠른 배송의 원조인 미국 아마존을 앞지른 지 오래다. '빨리빨리 DNA'를 가진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택배업체들이 무한 경쟁에 나서면서 새벽배송, 당일배송, 로켓배송, 총알배송 등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했다. 시간이 걸리지만 가성비 좋은 '편의점 반값 택배'도 인기다. 먹거리뿐 아니라 생필품까지 택배에 의존하니 가히 '택배공화국' '배송천국'이라 할 만하다.

국민 1인당 택배 이용 횟수는 2000년 2.4건에서 2021년 70.3회로 폭증했다. 택배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소비자들의 편의가 커지면 커질수록 택배 종사자들의 피로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인 택배 노동자들은 주 6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쉬기 어려운 실정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사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택배 없는 날'이다. 2020년 고용노동부와 한국통합물류협회, 주요 택배사들은 택배 종사자들의 과로를 막고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매년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정했다.

네 번째 택배 없는 날이었던 어제(14일) CJ대한통운과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대다수 택배사들은 운행을 중단했다. 하지만 유통 공룡인 쿠팡을 비롯해 SSG닷컴의 쓱배송, 마켓컬리 등은 정상적으로 영업해 뒷말이 나왔다. 쿠팡은 "택배기사들이 언제든 휴가를 쓸 수 있다"며 굳이 같은 날 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밝혀 다른 택배사들과 충돌했다. 쿠팡의 선택은 자유지만 업계 2위 쿠팡의 불참은 업계 합의로 정한 택배 없는 날의 취지를 퇴색시킬 수 있다. SNS에서 상당수 소비자들이 "늦어도 괜찮다"며 택배 노동자들을 응원하고 있다. 택배기사들의 열악한 근무여건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쿠팡의 불참으로 합의가 깨지면서 택배기사들의 달콤한 하루 휴식인 택배 없는 날이 없어지게 될까 걱정이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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