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대한민국 기업가정신 DNA

2023. 8. 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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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보국·제철보국 신념 삼고
기업보다 더 큰 존재를 위해
기업이 존재해야 한다는 소명
K기업가정신의 독특한 특징

지난 7월 10일 경남 진주의 한 대강당은 전 세계 47개국에서 모인 외국인들로 꽉 메워졌다. 마치 K팝 콘서트에 온 것과 같은 열기마저 느껴졌다. 이날의 행사는 진주시와 세계중소기업협의회가 함께 주최한 'K-기업가정신 국제포럼'이었고, 행사에 참가한 외국인 학자·기업인·학생들은 21세기를 선도하는 대한민국 기업들의 기업가정신의 DNA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서 모였다.

미국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 교수도 지적했듯이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에서의 글로벌 기업들의 등장과 지금까지의 성장은 '경이롭다'는 표현으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고, 기존의 기업가정신의 위험 감수, 도전, 혁신의 DNA 외에도 대한민국만의 고유한 기업가정신의 DNA가 무엇인지에 대해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세계중소기업협의회 회장인 아이만 타라비시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서양에서 시작된 기업가정신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더욱 중요시되는 현대에 와서는 동양적 정신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하였다. 이미 지난 50년 동안 대한민국이 선진국을 쫓아가는 패스트 폴로어(Fast Follower)로서의 기업가정신의 특성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들이 되어 있으며, 이러한 기업가정신의 특성은 '동적전환역량(Dynamic Capability)'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렇지만 지금 전 세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 기업가정신의 DNA에는 동적전환역량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

첫째, 대한민국 기업가정신의 DNA는 기업보다 더 큰 존재를 향한 소명의식이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을 평생의 신념으로 삼았다. 포스코를 창업한 박태준 회장은 이 소명의식을 '제철보국(製鐵報國)'이라고 했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기업가정신에는 기업보다 더 큰 존재를 위해서 기업이 존재한다는 소명의식이 있다. 이러한 소명의식은 대한민국의 기업가정신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보면 초기 자본주의 모습에서도 이러한 소명의식이 나타난다. 특히, 네덜란드의 자본가들은 다른 유럽의 자본가들과 달리 자신들이 쌓은 부를 통해 도시가 발전하고 번영하는 것에서 일의 의미를 찾았다고 한다. 이러한 소명의식이 이제 서구의 기업가정신에서는 사라져버렸지만, 2019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대한 BRT 선언에서 볼 수 있듯이,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대한민국 기업가정신의 DNA는 공동체를 향한 책임의식이다. GS그룹의 창업주라고 할 수 있는 허만정 선생은 "돈은 개미같이 부지런히 모으되, 의로운 일에는 크게 써야 한다"고 말했고, 실제로 독립운동 조직 백산상회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1926년에 유한양행을 창업한 유일한 선생이 "지금까지 온갖 정성과 노력을 바쳐온 오직 하나의 목표, 복지사회를 이룩하고자 하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고 말했듯이 사회공동체를 향한 책임의식이 기업경영의 목표였다. 이러한 공동체를 향한 책임의식의 뿌리는 조선시대 유학의 대표적 인물인 퇴계 이황의 대동사회(大同社會)의 정신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퇴계 이황은 '나를 수양해 공동체를 이롭게 하라'고 가르치며, 모두가 하나 되는 통합의 사회를 가장 이상적인 사회공동체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 유교적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노력하였다.

동적전환역량, 소명의식. 공동체를 향한 책임의식이 결합된 대한민국 기업가정신의 DNA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시대의 기업가정신을 이끌어갈 미래 기업가정신의 방향이고, 세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기업가정신의 방향이다.

[한상만 성균관대 대학원장, 前한국경영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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