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 해임 또 해임… 전례 없는 공영방송 이사 '숙청'
방통위원장 면직 이어 공영방송 이사 5명 교체 추진
관련 조사 진행 중인데 해임, 사유도 모호하고 논쟁적
"전 정부와 비교 힘들 정도로 무리하고 과격하게 진행"
[미디어오늘 금준경, 박서연 기자]
지난 5월30일 윤석열 대통령의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면직 이후 두 달여 만에 5명의 공영방송 이사를 해임하거나 해임을 추진하고 있다.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의 해임도 추진하고 있고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장도 해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전례 없는 규모의 대대적인 해임이 이뤄지고 있다.
공영방송 이사 5명 교체 추진, 기관장들도 '타깃'
방통위는 현재(14일 기준) 남영진 KBS 이사장, 윤석년 KBS 이사, 정미정 EBS 이사를 해임했다.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도 해임 청문을 끝내고 의결만 앞둔 상태다.
미디어기구 기관장들도 타깃이 됐다.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은 TV조선 재승인 점수조작 의혹으로 기소됐다는 이유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면직했다. 방통위가 지난 10일 이례적으로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근태 문제 등을 지적한 검사 결과를 내놓은 상황에서 정연주 위원장 해임 논의도 조만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선 표완수 이사장 해임안이 상정돼 논의를 앞두고 있다. 해임안 상정은 정부가 임명한 상임이사 3명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인사 교체는 내년 4월 총선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특히 방통위가 공영방송 이사 해임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 임명 전에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을 종결하려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김효재 직무대행 체제에서 이례적으로 TV수신료 분리징수, 공영방송 이사 해임, 공영방송 및 산하기관 검사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이동관 후보자는 임시사무실 출근길에서 공영방송 이사들이 연달아 해임된다는 사실을 전하는 기자에게 “그래요?”라고 되물었다. 공영방송 이사 해임이 '취임 전 작업'이라는 지적에는 “나는 지명 받은 사람”이라며 방통위 현안에 즉답을 하지 않았다.
KBS 이사회와 방문진은 야당 추천(문재인 정부 여당 추천) 이사들이 다수를 점하는 가운데 2명씩만 교체되면 현 정부여당 추천 위원이 다수가 돼 사장 해임과 선임 등 논의를 주도할 수 있다. 실제 방통위는 여야 구도를 바꿀 수 있는 KBS와 방문진 이사를 2명씩만 해임 또는 해임을 추진하고 있다. 김효재 대행 체제에서 급작스럽게 방통심의위에 대한 검사에 나서고 위원장 근태 문제 등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 역시 선거를 앞두고 정연주 위원장 해임을 위한 포석일 가능성이 있다. 정연주 위원장의 임기는 2024년 7월22일까지다.
결과도 안나왔는데 해임 추진… 사유도 '모호'
해임이 결정되거나 추진 중인 공영방송 이사들의 해임 사유는 하나 같이 논쟁적이다. 방통위는 TV조선 재승인 점수 조작 의혹에 연루된 윤석년 KBS 이사, 정미정 EBS 이사를 해임했다.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고 이사회 직무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반발 속에서도 “명예를 실추시키고 국민의 신뢰를 크게 저하시켰다”는 등의 이유로 해임을 강행했다.
다른 이사들의 경우 해임 사유가 더욱 논쟁적이거나 모호하다. 방통위는 남영진 KBS 이사장 해임 사유로 법인카드 사용 의혹이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중인 점과 상위 직급의 임금구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등 경영 악화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법인카드 의혹의 경우 국민권익위 조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해임 사유로 제시됐다. 경영 지표가 특정 기간 심각하게 나빠지지도 않았다.
방통위는 경영지표 악화 책임을 물으면서도 정작 어떤 경영 지표가 어느 정도 악화됐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반면 김현 방통위 상임위원과 KBS 야당 추천 이사들이 제시한 수치를 보면 2022년 KBS의 전년 대비 인건비 비율은 35.7%에서 31.2%로 줄었고, 연봉 1억 이상 직원 비율은 51.3% → 50.6%로 소폭 감소하는 등 '악화'로 볼 수 없는 지표들이 있다.
해임 추진 중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의 해임사유 역시 비슷한 문제가 있다. 방문진은 감사원 감사와 방통위 검사를 받고 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방통위가 해임 청문을 실시했다. 방통위는 권태선 이사장 해임 사유로 △과도한 MBC 임원 성과급 인상 방치 △MBC 및 관계사의 무리한 투자로 인한 경영손실 방치 △MBC 부당노동행위 방치 △MBC 사장 선임 과정에서 부실 검증 △방문진 임원 부적정 파견으로 MBC 감사 업무 독립성 침해 △허위 사실 기재한 사장 후보자가 최종 3인에 선정되도록 방치 등 사유를 들었다.
이와 관련 권태선 이사장은 “재임 기간, MBC는 방문진에 100억 원에 가까운 출연금을 내고서도 회계기준으로 684억 원, 566억 원의 영업이익을 시현했다”고 반박했다. 또한 △방문진은 MBC 관리감독을 해태한 적이 없고 △이사회의 논의 결과를 이사장의 해임사유로 삼을 수 없고 △MBC 계열사 관리감독 해태 책임을 물으면서 동시에 MBC 관리감독에는 독립성 침해 책임을 묻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김기중 이사의 경우 MBC 사장 주식 의혹에 관한 방문진의 특별감사 당시 참관인으로 참여한 점이 해임 사유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역시 과도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반복되는 문제? “이전 정부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
문재인 정부 때도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 이사 해임 사례가 있지만 해임 사유와 규모 등에 차이가 있다. 문재인 정부 방통위에서 해임한 강규형 KBS 이사의 경우 업무추진비 부정 사용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토대로 해임을 의결했다. 반면 현재는 감사원 감사나 방통위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해임을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해임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은 경영 문제뿐 아니라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등 이념 편향적 발언으로 수차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점을 고려했음에도 표적 해임 논란이 일었다.
홍원식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는 “공영방송이 구조적으로 취약한 문제가 있지만 현 정부에선 이전 정부와 비교할 수 없이 굉장히 무리하게, 동시다발적으로, 과격하게 진행하고 있다”며 “다퉈볼 만한 여지가 많음에도 빨리, 무리하게 군사작전 하듯이 진행하고 있다. 결국 이동관 위원장이 왔을 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추후) 불법으로 판정 받거나 무효가 되더라도 당장 지금 상황을 해결하는 게 목표로 보인다. 이게 극단적으로 나타난 형태”라며 “법의 정신이나 가치는 없어지고 누가 권한이 있는가만 살피는 형식적 법치주의”라고 지적했다. 강형철 교수는 “방송법의 핵심은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인데, 그것이 실패했다는 게 이번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며 “장기적으로 방송법을 고칠 필요가 있고 단기적으로는 (해임효력정지 가처분 등) 불법, 탈법, 편법적 행위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홍원식 교수는 “과거에는 다툼의 여지가 있었다 해도 현재는 이미 공영방송 이사 해임이 부당하다는 사실이 법원 판례가 쌓여 있다.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진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며 “이는 방통위나 우리 방송 전반을 정치의 하부 구조로 만드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방통위는 신태섭 KBS 이사가 동의대에서 해임되자 결격사유인 '징계로 해임처분을 받은 때부터 3년이 지나지 않은 자'에 해당된다며 해임했으나 이후 해임무효소송에서 승소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강규형 KBS 이사는 법인카드 유용 등을 이유로 해임된 이후 해임무효소송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강규형 이사가 법인카드를 부정 사용한 건 사실이나 해임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기사 본문 중 “김기중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는 해임 청문을 끝내고 의결만 앞둔 상태다”라는 대목이 사실과 달라 바로잡습니다. 김기중 이사는 오는 9월 청문이 예고된 상황입니다. 15일 오전 11시 48분 기사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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