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아이를 안 낳는 ‘진짜’ 이유]④ “0세 자녀 키울 때 양육 스트레스가 향후 7년 내 후속 출산에 영향…완벽 강조하는 모성신화 수정해야”
“첫 출산 후 양육 스트레스가 후속 출산 막는 경우도”
“모성신화 대신 충분히 좋은 엄마면 된다는 인식 필요”
한국의 출산율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지난 3월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중요한 국가 어젠다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나온 대책은 대체로 보조비 지급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비단 경제적 부담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힘들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 문화심리적 요인도 출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조선비즈는 이제껏 다뤄지지 않은 저출산의 숨은 이유들을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한국 사회에는 완벽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있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진경선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엄마에게 ‘이래야 한다’는 엄격한 양육 기준을 제시하는 모성(母性) 신화를 수정해야 한다”며 “저출생 극복을 위해 (완벽하진 않아도) ‘충분히 좋은 엄마’면 된다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가치 있지만 어려운 일이다. 엄마들은 아이를 양육하며 ‘어린 아이를 두고 출근해도 되나’, ‘완벽하게 키우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런 죄책감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하거나 퇴직하기도 한다. 젊은 세대는 이런 모습을 보며 출산 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분명하게 알게 되고 아이 낳는 것을 기피하게 된다는 게 진 교수 설명이다.
진 교수는 영유아 발달을 연구하는 발달심리학자다. 저서로 ‘저출산의 심리적 요인’이 있다. 조선비즈는 지난 7일 진 교수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ㅡ모성 신화 이야기가 저서에 나온다. 양육의 책임은 엄마에게 있고, 자녀는 남에게 맡기면 안 되고, 이상적인 엄마 역할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저출생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완벽한 것을 기본이라고 여긴다. 엄마(그리고 아빠)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이상적인 엄마는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모성 신화로 양육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아직도 아이 기저귀를 안 떼면 어떡하느냐’, ‘아이가 백일도 안 됐는데 출근하면 어쩌나’, ‘어린 아이를 두고 해외 출장을 가면 어떡하느냐’ 등. 주변에서 관심과 애정을 담아 조언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실에서 이런 완벽한 엄마는 불가능하다.
아이를 키우며 힘에 부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고, 정서 조절이 어려울 수 있다. 모성 신화를 내재화한 엄마들은 힘들어하는 것 자체에 죄책감을 느끼고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것은 가치있지만 어려운 일이다. 극도로 완벽한 엄마 대신 충분히 좋은 엄마면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ㅡ경력 단절도 저출생의 원인 중 하나다.
“여전히 아빠보다 엄마가 육아 휴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들은 자녀를 키우며 탄력적으로 근무할 수 있지만 보수가 적은 곳으로 이직하거나, 퇴직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왜 나에게만 이런 선택이 요구되는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청년들은 이전 세대에서 일어난 여성의 경력 단절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일에 몰두하고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은 양육이 개인의 과도한 의무로 귀결되는 것을 보며 아이 낳기를 기피하게 된다.
직장에서 남성과 여성의 출산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다르다는 심리학 연구가 있다.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능력있는 가상의 남녀 주인공이 있다. 연구 참가자 절반에게 남녀 주인공이 최근 자녀를 낳았다고 말하고, 나머지 참가자에겐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이후 남녀 주인공이 얼마나 유능하고 따뜻한지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녀를 낳았다는 정보를 주지 않을 경우 참가자들은 주인공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따뜻함보다 유능함이 두드러진다고 평가한다. 자녀가 태어났다는 정보를 줬을 때는 다르다. 참가자들은 남성이 자녀를 갖게 될 때 유능함을 유지하며 따뜻해진다고 평가한다. 여성이 자녀를 낳으면 유능함보다 따뜻함이 두드러진다고 판단한다.
남성의 경우 자녀와 관계 없이 유능함이 유지된다고 생각하지만, 여성의 경우 자녀가 없을 때는 유능함을 인정하고 자녀가 있을 때는 유능함을 낮게 평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고정관념에 대해 조금씩 깨닫고 있다. 내가 사회에서 어떤 사람으로 비춰질지, 고용·평가·승진에 대해 고민하며 자녀를 낳는 일이 나의 사회적 자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ㅡ정당한 사회에 대한 믿음이 없어 아이를 낳지 않기도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정에 대해 기대하고 개인이 마땅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여긴다. 진화의 역사에 따르면, 집단에서 모든 것이 공정하게 분배될 때 승자가 독식하는 것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의 공정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고 이에 따라 행동이 변할 수밖에 없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당한 세상에 대한 믿음(beliefs in a just world)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세상이 공평하다고 믿을수록 미래를 바라보며 결정하고 타인을 위해 행동한다.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일도 미래 지향적인 일이다. 타인(자녀)을 위해 자신의 자원과 시간을 쓰는 친사회적 행위로 볼 수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가 정당하다는 믿음이 커질수록 젊은 세대의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다.”
ㅡ양육 스트레스가 후속 출산을 막기도 한다.
“만 0세 자녀를 키우는 엄마의 양육 스트레스와 결혼 만족도가 이후 7년 이내의 후속 출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있다. 부부의 결혼 만족도는 신혼 초 가장 높고 첫 자녀 출산과 함께 감소한다. 부모가 되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극단적으로 지치고, 힘든 상황을 누군가와 공유하기 어렵다는 고립감을 느끼며, 첫 자녀 출산 후 후속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엄마들은 출산과 양육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지만 그럼에도 여러 부정적인 심리를 경험한다. ‘이렇게 힘들다니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다’, ‘왜 나만 엄마로서 양육의 책임을 떠맡아야 하나’ 등 죄책감을 느끼는 동시에 엄마에게만 과도하게 부여되는 버거움이 불공정하다고 인식한다.”
ㅡ한국 사회에 진짜 필요한 저출생 대책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모성 신화를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녀는 엄마가 키워야 하고, 아이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돼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 결국 내가 그런 아이를 키워낼 수 없다면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자식 농사가 엄마의 성적표가 된다는 신념도 부모의 역할을 과도하게 느끼도록 한다. 이제는 우리가 왜 이런 엄격한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질문을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과긴장하지 않고 적당히,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부모 모두의 육아휴직 활성화, 유연근무·재택근무·자녀돌봄휴가 확대 등이 대표적이다. 최소한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이 이런 제도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양육은 가정 내에서만 해내기 쉽지 않은 일이다. 자녀를 낳으면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약속보다, 자녀를 키우는 게 해볼만한 일이라고 여기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경험이 공유된다면 미혼이나 자녀가 없는 사람들에게 출산에 대한 의향을 변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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