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알퍼의 영국통신] '고집불통' 영국 여름
나홀로 비 내리고 서늘한 날씨
독불장군 영국, 기후도 닮은꼴
서늘한 영국에서 자란 나는 늘 여름이 무더운 나라에 사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2007년 한국에 살게 되면서 마침내 내 꿈은 이루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신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면서 벌한다'는 말이 있듯이 찜통 같은 한국 여름 내내 고생하다가 9월이 되어 열대야가 선선한 공기로 바뀔 때쯤에야 나는 행복감을 느꼈다.
2019년 말 영국으로 돌아온 나는 2020년 영국의 폭염을 경험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 후로 매년 여름 점점 더 더워지는 것 같더니, 작년 여름 링컨셔주의 커닝스비는 40.3도로 역대 최고의 수은주를 기록했다.
이번 여름도 덥게 시작했다. 5월과 6월 초는 숨 막힐 정도로 덥고 건조했다. 그러던 중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6월 초가 지나자 거의 매일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가 내렸다. 영국인들은 다시 경량패딩을 꺼내 입기 시작했고, 여름 옷가지는 다시 옷장으로 들어갔다. 간혹 밤에는 이웃집 보일러 배기구에서 김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뉴스는 맹위를 떨치는 유럽의 폭염, 그리스의 산불에 관한 기사로 가득했지만 영국인들은 패딩조끼를 입고 정원이 웅덩이로 변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아마 올해의 서늘한 여름은 예외적인 것일 수도 있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하면서 내년 다시 한번 기록을 경신하는 더위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최소 올해는 전형적인 영국의 여름을 경험했다. 영국의 큰 스포츠 이벤트인 윔블던 테니스 대회와 애시스 크리켓 시리즈도 강풍과 비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테니스 대회 결승전 내내 강풍이 불어 공이 코트 안을 마구 날아다녔고, 잉글랜드가 호주에 패배한 이유도 크리켓 경기를 계속 중단시키던 날씨 때문이었다.
영국의 날씨는 매우 독특하다. 서쪽에는 북대서양 해류라고 불리는 멕시코만에서 내려오는 강력하고 따뜻한 해류가 흐르고 여기에 북극과 그린란드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와 해류가 충돌한다. 그리고 이들 세력이 잠잠할 때는 남유럽과 북아프리카의 뜨거운 공기가 올라와 지난 몇 년처럼 무더운 여름을 만든다.
이 결과 '다중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것 같은 요상한 날씨가 만들어진다. 사방팔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는 따뜻함과 차가움이 함께 느껴지기도 하고, 사계절 날씨를 하루에 만나는 날도 있다. 파란 하늘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고, 햇볕이 비치다가 우산을 뒤집을 것 같은 바람과 소나기를 만나기도 한다.
지구온난화는 영국에서도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전형적인 영국 여름 또한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 영국기상청의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과 같은 폭염이 이번 세기 중반쯤에는 일반적인 기후로 자리 잡을 수 있으며 이것은 미래의 기후에 대한 잠재적인 경고라고 한다. 하지만 선글라스와 선크림에 좀처럼 손이 가지 않던 올여름은 기후변화조차도 고집불통 영국 여름을 완전히 물러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팀 알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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