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하나"…100년만 참사에 하와이 원주민 십시일반 구호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에 정부 대응이 늦어지자 원주민들이 직접 구호 활동에 나섰다고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날 마우이 카하나 해변에는 구호품을 가득 실은 보트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웃 오하우섬과 몰로카이섬에서 출발한 각 보트에는 발전기, 가스탱크, 옷으로 가득 찬 봉투, 즉석 조리 식품 등이 실려있었다.
보트에 구호품을 싣고 온 사람들은 정부 관계자가 아니라 대부분 하와이 원주민으로 구성된 민간인이었다.
이날 집계까지 최소 93명이 숨져 미국에서 100여 년 만에 최악의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마우이섬 주민들은 현재 발전기와 휘발유, 식수, 식료품 등을 긴급히 필요로 하고 있다.
이번 산불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라하이나 주민 제리카 나키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에 감정이 북받쳤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며 "라하이나에 자부심이 많았기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우리가 가진 것은 서로뿐이고, 견디고 있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라하이나 북쪽 나필리 공원에 설치된 임시 배급소에서 자원봉사자들로부터 통조림과 생수, 기저귀, 기타 생필품 등이 담긴 긴급 구호 물품 등을 받아 갔다.
마을의 쇼핑몰은 기부금 전달 센터로 바뀌었고 마을의 옛 기차역 근처에는 무료로 나눠주는 휘발유를 얻으려는 차 100여대가 늘어섰다.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상황에서 주민들은 메모지를 남겨두는 방식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구호품 수송에 참여한 마우이 중부 키헤이 주민인 폴 로메로는 "지역사회로부터 도움의 손길이 쏟아지고 있다"며 "우리 '오하나'(하와이 원주민어로 '가족')를 지원하기 위해 발로 뛰며 사비를 소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라하이나 남쪽 올로왈루에 사는 에디와 샘 가르시아 부부는 자신들 소유 농장을 집을 잃은 사람들의 쉼터로 제공했다. 두 사람의 농장도 불에 타 수십만달러 상당의 피해를 봤지만, 부부는 농장에 임시 주택을 만들고 태양광 발전 시스템, 위성 연결 인터넷 등을 다른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에디 가르시아는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연방 또는 지방정부 지원이 거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와이 원주민인 재러스 럼렁은 "우리를 도와주는 정부 기관은 없다"며 "이곳은 우리의 집이며 공동체"라고 말했다.
주민 폴 로메로도 "세금을 받는 정부의 대응은 놀라울 정도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라며 "그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라고 비판했다.
라하이나의 북쪽에 있는 호노코와이 마을에서 휘발유를 나눠주던 애슐리 얍씨도 "이 휘발유는 우리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마련했다. 정부는 대체 어딨는지 모르겠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하와이 원주민들은 앞서 미국 병합 이후 개발 과정에서 원주민의 전통문화가 파괴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참사까지 오랜 고통과 좌절이 반복되는 것으로 느낀다고 WP는 전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산불을 진화하고 산불 피해 지역 밖에 마련된 대피소로 생존자들을 대피시키고 식료품을 제공하고 있다. 또 필수적인 전기·수도 등을 복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대규모 긴급 구호 물품이 도착하기까지 시일이 걸리다 보니 구호품 및 구호 인력 부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여전히 일부 이재민의 경우 전화나 교통수단 없이 피해지역에 남겨져 있다.
리처드 비센 마우이 카운티 시장은 정부가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정부는 상점으로 달려간 뒤 물건을 사 가져다 놓는 일반 시민들보다 아마도 느리게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할리우드 배우 드웨인 존슨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산불 피해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기부를 독려했다.
그는 "지금쯤이면 전 세계 모든 분이 산불로 인해 파괴되고 황폐해진 하와이 마우이섬을 보셨을 것"이라며 "정말 가슴이 아프고 여러분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모든 가족, 오하나, 이 끔찍한 시간을 굳세게 버티세요. 회복력은 우리의 DNA이고 우리의 조상은 우리의 핏줄에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드웨인 존슨은 하와이 인근 사모아인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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