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피서객 사이로 폭죽 '펑펑'…을왕리해변 '광란의 밤'

송승윤 2023. 8. 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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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한 연기에 화약 냄새 진동…땅에 폭죽 쏘고 사람 맞히기도
폭죽으로 장난치는 피서객 [촬영 송승윤]

(인천=연합뉴스) 송승윤 기자 = 해수욕장에서는 매캐한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모래사장 곳곳에선 산불이라도 난 듯 자욱한 연기가 수시로 솟아올랐다. '펑펑'하는 폭발음과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굉음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재난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모습이지만 이는 영화의 한 장면도, 산불이 난 현장도 아니다. 주말 밤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광란의 불꽃놀이가 벌어진 모습이다.

지난 13일 오후 8시께 찾은 을왕리 해수욕장은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

곳곳에서 한꺼번에 폭죽이 터지며 해수욕장 전체는 금방 연기로 뒤덮였다. 매캐한 연기와 화약 냄새 때문에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거나 손을 휘젓는 이들도 자주 보였다.

아찔한 장면도 자주 연출됐다. 놀러 온 친구끼리 총을 쏘는 것처럼 폭죽으로 서로를 맞히거나 물수제비를 하듯 땅으로 발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지나가던 행인이 다리에 불똥을 맞아 큰 소리로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불꽃놀이 하는 피서객들 [촬영 송승윤]

긴 막대형 폭죽을 수십 개 묶은 상태로 발사하거나 불량으로 보이는 폭죽이 공중이 아닌 땅에서 터져 주변에 앉은 이들이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모래사장 옆 방파제에서도 사람들이 있는 갯벌 쪽으로 폭죽을 쏘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해변에 머문 약 2시간 반 동안 해수욕장에선 1분도 멈추지 않고 폭죽이 터졌다.

손에 들고 불꽃놀이를 할 수 있는 일명 '스파클링 폭죽'은 외형상으로는 귀여워 보여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다. 다 타고 남은 철사를 모래에 그대로 방치하는 이들이 많아 맨발로 백사장을 걷다가 발을 크게 다칠 우려가 있어 보였다.

이날 해수욕장에 놀러 온 황모(38)씨는 "무분별하게 불꽃놀이를 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면서 "모래놀이하는 아이들도 많은데 이러다 무슨 사고라도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혀를 찼다.

을왕리 해수욕장에선 매년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해수욕장의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해수욕장에선 허가받지 않은 이 같은 폭죽 사용은 금지돼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1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그러나 폭죽 판매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라서 해수욕장 주변에선 여러 종류의 폭죽이 제한 없이 팔리고 있다. 폭죽 사용이 불법인지를 모르는 이들도 많아 좀처럼 근절이 어려운 상황이다.

을왕리 해수욕장 불꽃놀이 [촬영 송승윤]

해수욕장 인근에서 폭죽을 파는 한 상인은 "옛날부터 폭죽을 팔아 왔는데 갑자기 못 팔게 되면 생계에 큰 지장이 생긴다"면서 "파는 건 전혀 문제가 없는데 사용하는 피서객이 부적절하게 이를 사용해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시 중구는 올해부터 해수욕장 관리 업체에 용역을 줘 폭죽 사용과 관련한 단속 활동을 하도록 했지만, 정작 성수기인 7∼8월은 단속 기간에 포함하지 않아 무분별한 폭죽 사용이 휴가철에 더욱 극심해진 실정이다.

폭죽 관련 민원이나 신고가 들어올 때마다 구청 직원과 경찰이 현장에 나가 대응하지만 계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폭죽 사용을 제지할 경우 놀러 왔는데 기분을 나쁘게 한다며 화를 내거나 욕설을 하는 일도 잦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6월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불꽃놀이를 단속하는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며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을왕리 해수욕장 불꽃놀이 [촬영 송승윤]

이 영상에선 해수욕장 관리 직원이 "폭죽을 쏘면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며 경고 방송하는 모습이 담겼다. 경고 방송에도 불꽃놀이가 끊이지 않자 이 직원은 "지금이 자정이다. 좀 말을 들어 X먹어라 X발 XX들아"라고 분노하기도 했다.

해당 영상은 실제로 지난 6월 해수욕장 관리 업체 직원이 경고 방송을 한 장면으로 구청은 이 직원에게 단속 시 언행을 조심해 달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해당 영상에는 이 직원을 옹호하는 댓글이 많았다.

폭죽 쓰레기 문제도 심각하다. 을왕리해수욕장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의 상당량은 폭죽 쓰레기다. 특히 플라스틱 소재의 탄피가 나오는 폭죽의 경우 갯벌 쪽으로 날아가며 심각한 바다 오염을 부추기기도 한다.

중구청 관계자는 "해변에 마련된 컨테이너에서 방송을 하거나 구청 직원 등이 돌아다니며 일일이 제지하기도 하지만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라며 "내년에는 5월부터 10월까지 쭉 단속 활동을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aav@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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