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 떨어져서 봐야 … 나 자신과도 거리 둘 때 행복"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8. 1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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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 출간한 마음간호사 원영스님
불교방송 최고 인기 진행자
"힘 얻었다는 반응에 보람"
무상함 마주하는 게 불교
"불교에서 고(苦)의 반대말은
즐거움 아닌 평온한 상태"
23세에 출가한 뒤 여러 대학과 사찰 등지에서 강의하면서 '마음 간호사'라는 별명을 얻은 원영스님. 불광출판사

"우리는 흔히 '고(苦)'의 반대말을 '락(樂)'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고'의 반대는 평안이라고 가르칩니다. 평온한 상태가 곧 즐거움인 거죠."

최근 '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불광출판사)를 펴낸 서울 성북구 청룡암 주지 원영 스님(50)은 가장 유명한 불교 안내자다. 스님은 10년 동안 BBS 불교방송 라디오 '좋은 아침 원영입니다'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원영 스님의 불교대백과' 등을 통해 불교를 친숙하고 수월하게 전달하는 데 힘써 왔다. 두 프로그램은 불교방송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다.

"불교 입문자들을 위한 방송을 하다 보니 교재를 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책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어디 연재했던 글이 아니라 20일 만에 쓴 책이에요. 시력이 더 나빠지기 전에 쓰고 싶어서 하루 10시간씩 매달렸죠."

원영스님은 '무상(無常)'을 직시하는 것이 불교 공부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현실은 무상합니다. 그 무상한 현실을 모른 척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 그것이 불교입니다."

스님은 서른 살 무렵. 1년여 만에 여러 가족이 연이어 죽는 슬픔을 겪으며 무상함을 체득했다고 말한다.

"작은오빠가 갑자기 죽고, 그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연이어 큰오빠와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이미 출가한 상태여서 불교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도 감당이 안 되더군요. 그때 깨달았어요. 아, 내가 머리로만 공부를 했구나. 가족의 시신을 염하는 걸 보면서, 백골이 타들어 가는 걸 보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어요. 거리를 두게 된 거죠."

'거리'라는 개념을 스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매사를 떨어져서 보는 거죠. 어떤 사건이나 슬픔을 바라볼 때 거리를 두는 거예요. 나 자신을 바라볼 때도 거리를 둬요. 떨어져서 보면 무상한 이치를 느낄 수 있어요. 거리를 두지 않기 때문에 괴로움으로 밀려드는 거예요. 거리를 두지 않으면 전체를 볼 수 없고 특정 단면만 보게 됩니다."

대중과 호흡하며 인기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스님에게는 감동적인 사연도 많다. "청취자 한 분이 장애가 있는 자녀를 차에 태우고 가면서 매일 방송을 들었는데 죽고 싶을 때마다 힘이 됐다는 사연을 보내왔어요. 사연을 듣고 '제가 매일 아침 그 차에 타고 있었군요'라고 했더니 울음을 터뜨리셨어요. 제 방송을 듣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보람 있어요."

스님은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이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스님이 신도들과 대화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바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마음의 거름망을 성글게 살아야 합니다. 마음의 거름망을 촘촘하게 하면 쓸데없이 많은 것이 걸립니다. 사람들 표정도 걸리고 눈빛도 걸리고 하죠. 그러면 행복할 수 없어요."

스님은 젊은 시절 몸이 아파서 요양차 절에 갔다가 출가하게 됐다. 23세에 출가해 운문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하나조노(花園)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계종 불학연구소 상임 연구원과 교육위원 등을 역임하고, 여러 대학과 사찰 등지에서 강의하고 '청년출가학교' 등에서 지도법사로 소임하면서 '마음 간호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스님은 불교의 미래를 밝게 본다. "현대사회는 불교에 더 호의적일 겁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다른 종교에 비해 합리적이고 과학적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교리는 MZ세대가 추구하는 것과도 맞습니다. 결국 불교는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는 법을 가르치니까요. 불교가 세상의 변화를 못 따라간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저는 좀 못 따라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기복신앙이면 어때요. 결국 다 불교의 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인데요."

스님은 "너무 예민해서 힘들다"는 기자의 말에 "살면서 놀라지 않는 습관을 좀 가지라"는 말을 남기며 인터뷰 자리를 떴다. 청룡암 밖에는 시원한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허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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